시급 0원의 실습쌤

12. 실습 시간 800시간

by Alice Min

‘실습쌤~ 여기 베드 좀 다시 정리해요!’


더 이상 원무과에서 일할 자신이 없었다.


자꾸 듣게 되는 말투 지적, 복잡한 서류 과정, 일일이 설명해야 했던 비급여 치료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미리 설명하지 않고 비급여 처치를 한 진료실이 미워졌고

‘그 싸가지 없는 원무과 직원’이라는 별명도 그만 듣고 싶었다.


그럼 뭘 해 먹고 살아가야 하지


다행인 지 불행인 지 대학생 시절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미리 따놓았다.

학과장 교수님이 지금 취득해야 편하다고 하셨던 말씀에 동의한 부모님이 강제로 학원에 보내주신 덕분이었다.

다행인 점은 학기 중 자격증이 하나 더 생긴 것과 동시에 자기소개서에 쓸 얘기가 많아졌다는 것이고

불행인 점은 동기들은 연애하고 여행 갈 때 나의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은 두 곳의 병원에서 실습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물론 실습생이라고 안쓰럽게 봐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써먹기 좋은 시급 0원짜리 비정규 직원이다.

나는 20대 초반 어릴 때 이 자격증을 따 놓은 것을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이 먹고 실습을 했다면 나는 아마 그 실습마저도 하기 싫다고 때려쳤을 것이다.

실습하는 것처럼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직업이 된다면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병동에서는 간호사들에게 치여 살았고, 한방병원 외래 진료실에서는 선배 간호조무사들에게 치여 살았기 때문이다.


왜 실습생들한테 자신들의 근무 스트레스를 푸는 걸까?

실습 내내 나는 ‘실습쌤’ 이라는 괴상한 명칭으로 불렸다.

정말 다행히도 그때의 나는 독기로 800시간의 실습 시간을 모두 빠짐 없이 채웠다.


설날 당일에도 나가서 실습 시간을 채워냈다. 물론 배운 점도 있다.

병동에서의 근무는 앞으로 내가 겪을 병원 생활이 어떨 지 미리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병원급이라 비록 혈관 주사는 불가했지만, 이때 나는 주사 빼는 것을 배우고 나중에 현장에서 써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혈압을 수동으로 재는 법도 배웠다. 이 두 가지의 경험은 나중에 내가 정형외과 취업을 했을 때 가장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한방 병원에서는 각 파트별로 실습을 돌았다. 이곳에서 간호조무사로서 환자들을 응대하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


살던 곳과 먼 곳에 위치한 병원들이었음에도 기꺼이 응원을 와 준 친구들이 있어 이 실습을 버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