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딩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2. 불명열

by Alice Min

‘그 싸가지 없는 안경 쓴 통통한 원무과 직원’

아동 병원을 근무한 1년 7개월 동안 맘카페에서의 내 한 줄 평이었다.


한 드라마에서 자식 가진 부모만큼 이기적인 존재 없다고 했던 대사를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원무과에 근무하면서 이 대사를 여실히 공감했다.


병원에는 문의 전화가 많이 온다.

아동 병원 원무과에서는 아이가 아픈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뭘 해 줘야 하냐고 묻는 전화를 가장 많이 받았다.

마음 같아서는 화를 내며 ‘아이가 지금 그렇게 아픈데 당장 오셔야죠’ 하고 싶었지만

병원에 가지 않고도 아이를 낫게 하는 기적 같은 처방을 부모들은 원무과 직원에게 요구했다.


그리고 나는 부모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 예시로 아이를 데리고 온 할아버지 한 분이 당신 아들 전화라며 나를 바꿔주었다.

받아보니 내 아들이 지금 많이 아프니 앞의 대기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진료 받게 해 달라는 전화였다.

나는 진심으로 그 전화에 화가 났다. 대기자 중 한 아이는 열이 38도 넘어가는 아이도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또 아이는 걱정되니 전화는 하지만 먼저 진료를 받았으면 좋겠다 라는 마인드라니.

부모들은 다 이런가…? 하는 충격을 그날 처음 받게 되었다.


‘우리 아이 열 난다며, 당신 자식이었어도 이랬을 거예요?’

‘근데요 선생님, 선생님 이름이 뭐예요?‘

‘선생님 진짜 싸가지 없게 대하시네요‘

병원은 22시에 끝나는데 마감시간은 그 전에 상황을 봐서 접수가 마감된다.

근데 왜 아기들은 꼭 병원 마감 시간 직전에 열이 나는 걸까…?

아픈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이성을 잃고 직원들을 대하게 된다.

*물론 매너 있게 대해 주신 부모님들도 많다.

다만 나는 그런 부모님들을 이 직장에서 많이 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나는 딩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의 부모 적응기는 끝나지 않았다.

내게 모성이 없는 건가 싶어 육아 그림 에세이도 구입한 뒤 진심으로 대입해 읽어도 봤다.

미혼이어서, 아이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랬던 점도 없지 않아 있었겠지만

가벼운 감기 걸린 애 하나에 부모야 당연하다지만

친외가 조부모들부터 이모 부부, 고모 부부, 삼촌 부부

한 마디로 사 대가 애 한 명에 걸려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혼자 병원에 갔던,

부모님의 표현대로라면 강하게 키운 아이였다.

그랬던 내 경험 때문인지 중고등학생이 어머니와 같이 병원에 오는 일은 낯설었다.

내 부모님이 나와 함께 병원에 같이 가시는 일은

당신들도 같이 진료를 보실 때, 내가 결국에는 대학병원 진료를 받아야 했을 때였다.


아픈 곳은 없는데 내 몸은 자꾸 37.8도가 표준 온도였고 어느 날 온도계는 38도가 넘긴 숫자를 그냥 찍고 있었다.

대학병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명열’이라고 진단 내렸다.

한 소설에서 읽었던 그 병명이 정작 내가 되자 기분도 이상해졌다. 이제 나도 그 여주처럼 되려나.

3개월에 한 번씩 와서 추적 관찰 하라고 했으나 내게는 이미 내 건강 따위 중요치 않게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이미 맘카페에서 핫한 연예인 보다도 더 핫한 연반인이 되어 있었다.

맘카페에 올라온 글들은 모두 자신의 잘못은 쏙 뺀 뒤 내가 말한 얘기들만 적혀 있었다.

게시물은 점점 자세히 적혀갔다. 내 용모를 그대로 설명한 뒤 그 직원이 이렇게 싸가지가 없다 라는 내용이 주였다.

처음 오는 사람도 나를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얼굴의 점 하나까지 빼지 않고 내 용모를 설명했으니 말이다.

소문에는 내가 대표 원장의 딸이라서 그렇게 싸가지 없게 구는 거라는 얘기도 있었다.

약 없이는 자지 못하기 시작한 것도, 병원에서 일할 때 갑자기 찾아오는 공황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기억력이 좋아서 따로 적지 않아도 사소한 정보도 곧잘 얘기하던 사람은 이제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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