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by 앤N


‘글아. 잘 지내?’

다음 날 밤, 지혁이에게서 파톡이 왔다.


20대 초반에는 이별하면 바로 연락처를 지우고 번호를 차단했었다.

일을 시작하니 그런 것까지 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안 좋게 헤어진 것도 아닌데 차단까지 해야 했을까?


아니지, 애초에 누군가와 헤어지는데 좋은 이별이랄 게 있나?

혼자 문자를 바라보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데 두 번째 메시지가 왔다.


“나 취직했어.”


‘어쩌라는 거지?'라는 생각과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우리는 취업 스터디에서 만났다. 대부분 동갑 커플이 그러하듯, 내가 먼저 취직하게 되었다.

데이트할 때 돈이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둔 게 있었고 취직도 했는데다,

지혁이도 알뜰살뜰 군인 월급을 모두 모아뒀기 때문이다.


“여기 물회 오랜만이다.”

“그러게. 맛있게 먹자.”


“아르바이트는 할 만해?”

“그냥 그렇지 뭐.”


“스터디하는 애들도 잘 있지?”

“어. 네가 다 아는 애들이잖아.”


“공부하거나 일할 때 힘든 거 있으면…”

“야. 밥 좀 먹자. 나 하루 종일 한 끼도 못 먹고 일했어. 밥 먹을 땐 좀 편하게 놔두면 안 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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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을 놓으며 말하는 지혁이의 표정은 마치 아빠가 엄마를 보는 표정 같았다.

그렇게 싸늘한 표정은 처음이었다.

지혁이는 취업 준비와 아르바이트로 바쁘다며 만남을 계속 미뤘다.

이날은 우리가 한 달 만에 만난 날이었다.


몸이 돌처럼 딱딱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식당에는 고요한 적막감만 흘렀다.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도 모른 채 식당을 나왔다.


‘우리도 끝인가….’


혼자 정처 없이 바닷가를 걸었다.

어둑어둑해진 밤하늘엔 폭죽인지 별빛인지 모를 것들이 무지개처럼 펼쳐졌다.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분수는 우리 관계 같았다.

솟구치고 떨어지고 솟구치고 떨어지고…


우리는 솟구칠까, 떨어질까.


그 후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우리는 파톡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 대망의 그날이 왔다.

이별 통보를 받은 날. 그런데 일주일이 지난 지금, 다시 지혁이의 연락이 온 것이다.


보랏빛으로 물든 창밖을 보니 우리의 봄날이 스쳐 지나갔다.

좋으니까 연애했고, 사랑하니까 걱정되었다.


그런데 내 걱정이 지혁이에겐 자만으로 느껴진 걸까.

나는 진심으로 축하의 문자를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답장을 해도 될까, 답장하면 우리 사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같은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하……. 그냥 잘래.”

휴대폰을 침대로 던지고 바닥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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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빠 빠빠빠 빠 굿모닝~


'전화까지 한 건가…’

지혁인 줄 알고 쳐다본 휴대폰 액정에는 동화 씨 이름이 떠 있었다.


“여보세요.”

“글 씨! 갑자기 전화해서 놀랐죠?”


“아. 조금요?”

“혹시 지금 밖에 보여요?”

“뭐가요?”

“오늘 별빛이 흐르는 모양이 ‘글’처럼 보이는 거예요!”

“네?”

“그래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글 씨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하하하!!! 별빛이 그런 게 어딨어요.”


“창밖에 한 번 봐요!”

창문을 열자 어느새 매서워진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찬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참, 아까 지혁이 답장하려 했었는데…


“글 씨! 창문 열었어요? 별 모양 보여요?”

“음… 글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한데요?”

“사진으로 안 나와서 전화했는데 제대로 안 보이나 보네요. 아쉬워요.”


“동화 씨. 감사해요.”

“네?”

“저한테 별빛 보고 전화해준 사람, 동화 씨가 처음이에요.”

“어? 그럼 이제 저도 글 씨한테 처음이네요?”

“그렇네요.”


“글 씨, 혹시 길모퉁이 북카페 비밀 알아요?”

“비밀이요?”

“제가 오늘 발견한 게 있는데… 다음 주 토요일에 같이 가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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