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길모퉁이 북카페입니다. 어? 두 분 같이 오시네요?”
“밥 먹다가 레몬티를 마시는데 여기가 생각나서 왔어요.”
레몬티가 만들기 어려운 음료도 아니고, 검색해보면 파는 곳이 널렸을 텐데 우린 왜 홀린 듯 이곳으로 왔을까.
“오, 두 분이 같이요?”
“네. 같이 도서관 갔다가 밥 먹는데 이상하게 여기가 생각나더라고요.”
“음료를 먹고 또 저희 카페가 생각나셨다니, 영광이네요. 그런데 동화 씨 오늘 엄청 빨리 오셨네요?”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사장님이 덧붙였다.
“동화 씨 도서관 한 번 가시면 해 질 때까지 계신다고 하셨거든요. 이렇게 밝을 때 뵈니 또 좋네요.”
나랑 데이트하려고 시간을 비워준 건가 싶어 동화 씨를 슬쩍 쳐다보았다. 동화 씨의 마음은 어떨까. 나와 비슷할까.
“아이고, 손님 오셨는데 대화만 했네요. 나도 참 특이한 사장일세.”
그걸 이제 아셨남.
“주문하시겠어요? 지금 메뉴 수정 중이긴 한데, 레몬티 드신다하셨죠?”
“원래 시그니처 메뉴 하나 아니에요? 레몬티도 해주시나요?”
“시그니처만 적어두긴 했는데, 레몬티를 먹고 우리 카페가 생각나셨다고 하니 메뉴를 추가해볼까 싶네요.”
동네에서 만나면 이상한 아저씨처럼 보일 텐데, 북카페에 계신 사장님은 신비로운 현자처럼 보인다.
“그럼 레몬티 주문되는 거죠?”
“두 분이 친해진 기념으로 특별히 주문받겠습니다. 겨울이 다가오니 따뜻하게 드릴게요.”
“와! 감사합니다.”
대체 레몬을 몇 번이나 외친 건지, 침이 고일 지경이다. 한참 수다를 떨고 나서야 창가 자리에 앉았다. 아직 해가 떠 있는데도 밖이 어둑어둑한 걸 보니 금세 추워질 것 같다. 카페 벽난로에 모닥불이 켜지면 얼마나 아늑할까 상상하니 겨울 북카페도 궁금해졌다.
“근데 글 씨는 무슨 일하세요?”
“어맛! 제가 제 얘기를 안 했군요. 동화 씨 이야기 듣다 보면 너무 재밌어서 제 얘기 할 틈이 없었어요.”
“뭘요. 저보고 재밌다는 사람 글 씨가 처음이에요.”
“네? 엄청 재밌는데요? 그럼 제가 계속 처음 할까요?”
아뿔싸! 이게 무슨 소리냐. 나 혼자 너무 앞서가는 거 아냐?
“네. 좋아요.”
동화 씨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지어 보이는 미소에 내 얼굴도 발그레해졌다.
“주문하신 따뜻한 레몬티 두 잔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특별 티! 잘 마실게요. 아 참, 제 얘기하고 있었죠. 저는 어학원에서 일해요. 유학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외국 지사와 연결해주기도 하고, 교재 개발에도 참여해요. 매니저 같은 역할이죠.”
“이야~ 원래 외국어를 좋아하셨어요?”
“네. 저는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행복하거든요. 언어가 그 나라의 문화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언어의 역사성, 규칙성, 사회성 같은 걸 공부하다 보면 그 나라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았네요? 앞으로 유의어 찾을 때 외국어도 같이 생각해봐야겠어요. 힌트 주셔서 감사해요.”
“네? 저는 글 쓰는 건 영 젬병이에요. 연극은 또 어떻고요. 관객들 앞에서 실시간으로 마음을 담은 대사를 읊는 게 어디 쉽나요? 그래서 저는 동화 씨가 너무 멋있어요. 외국어를 아무리 잘해도 진심을 담지 않으면 의미가 전달되지 않잖아요.”
“하하. 글 씨, 진짜 재밌어요. 왠지 글 씨 덕분에 작품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동안 진도가 안 나갔는데, 지난번에 글 씨 만난 후에 새벽까지 글이 술술 써지더라고요.”
“정말요? 축하해요! 제가 1호 팬 될 준비 하고 있을게요.”
“그런데 저희 연락처….”
“아 맞다! 그러니까요. 오늘 아침에 전화하려고 했는데 연락처가 없어서 진짜 바람맞았나 했다니까요?”
“저도 시간 보고 놀라서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번호가 없더라고요. 여기 적어주실래요?”
동화 씨가 내민 건 내 휴대폰과 똑같은 구형 기종, ‘우주 A4’였다.
“운명!”
“운명!”
우리는 또다시 동시에 외쳤다.
“동화 씨! 요즘 다 우주 폴더나 우주 S 쓰는데, 우주 A4라니 이게 무슨 우연이에요.”
“와…. 저도 친구들이 제발 핸드폰 좀 바꾸라고 성화인데, 주변에 우주 A4 쓰는 사람 처음 봐요. 어르신들 빼고요.”
“제가 아까 처음 한다고 했죠?”
“하하. 그러네요.”
내 번호를 먼저 저장한 동화 씨가 메시지를 보냈다.
[레몬, 운명, 처음]
우리 둘 사이에만 통하는 단어들이 텍스트로 찍히니, 간질간질한 기분에 동화 씨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창밖을 보며 이름을 뭐라고 저장할까 고민하다가, ‘동화 씨’ 옆에 레몬 이모티콘 하나를 붙였다.
동화 씨는 나를 뭐라고 저장했을까? 묻고 싶었지만 목구멍에서 글자들이 묵음 처리되어 나오질 않는다.
“글 씨, 저기 있는 기적 책 봤어요?”
“네! 저 두 번 썼어요. 동화 씨도 그때 썼죠?”
“보셨군요. 다른 손님들 것도 같이 구경할까요?”
기적 책을 펼쳐보니 검은색이던 동화 씨의 글씨도 분홍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동화 씨는 눈치를 못 챈 걸까? 신기해하며 뒷장을 넘기던 내 손이 멈칫했다. 낯익은 글씨체, 그리고 당황스러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글아. 꿀아. 꾸리꾸리.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