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 전 동화 씨가 공항에서 건네준 기적 책을 현관 앞에 두었다.
세부에서도 집을 나설 때 매일 보며 출근했는데, 돌아와서도 현관 앞에 두니 기분이 색다르다.
- 처음이 끝이 되길.
“글 씨~”
길모퉁이 북카페 앞에서 두 손을 흔드는 동화 씨가 보인다.
매일 반복되는 해 질 녘 노을이지만 동화 씨와 함께 보는 석양이 기대된다.
“동화 씨~ 들어갈까요?”
“넵!”
- 띠링
“어서 오세요, ‘길모퉁이 북카페’입니다. 오! 글 씨, 돌아오셨군요?”
“사장님! 오랜만이에요! 지난주에 뵌 거 같지만요, 하하.”
“저희 형 만나셨다면서요? 진짜 어떻게 그 카페를 딱 찾으셨대요.”
“그러니까요. 저는 사장님이 세부에 가게 차리신 줄 알았어요. 완전 닮으셨던데요?”
“두 분, 저 빼고 무슨 이야길 이렇게 재밌게 해요~”
“아, 동화 씨! 제가 세부 ‘corner cafe’라는 곳에 갔는데 사장님이랑 똑같이 생긴 분이 계시더라고요. 알고 보니 사장님 쌍둥이 형이셨어요.”
“네? 보통 우연이 아니네요, 진짜.”
마치 누군가 대본이라도 써 놓은 것처럼, 길모퉁이 북카페의 마법이 세부까지 따라온 기분이었다.
“그쵸? 우연이 반복되면 인연이라던데, 수많은 우연이 모여서 우리도 지금 만났겠죠?”
“어~ 두 분, 이제 저 빼고 이야기하시네요?”
“앗, 사장님. 죄송해요. 세부 사장님께서 안부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하하, 고마워요. 주문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오늘은 시그니처요! 동화 씨는요?”
“저도 같은 걸로 부탁드립니다!”
“넵, 자리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하~ 너무 좋네요. 익숙한 공기, 공간, 언어… 이래서 아빠가 모국어에 집착하려나… 여기나 세부나 같은 하늘 아래 있는데 같은 게 하나도 없으니까 재밌으면서도 그립더라고요.”
“잘 왔어요. 오자마자 바로 회사 가야 하는데 피곤하겠어요. 이따 집에 가서 푹 쉬세요.”
“동화 씨 보는 게 휴식이죠. 보고 싶었어요.”
“네?” “보고 싶었다고요.”
“… 저도요.”
동화 씨의 떨리는 입가 끝에 맺힌 옅은 웃음이 나와 같은 마음을 확인시켜 주는 듯했다.
“글 씨, 기적 책 펼쳐볼래요?”
“오~ 기적 책, 궁금해요. 어떤 기적들이 새로 적혀 있을까요? 어? 동화 씨…”
“어? 글 씨가 쓴 문장들 색이 투명해졌네요?”
“그러니까요. 이루어지면 투명해지나 봐요.”
“이루어졌어요?”
“그런 거 같아요.”
“혹시 이거…?”
사랑하면 유치해진다더니, 고등학생 때 떡볶이집에서 친구와 벽에 낙서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저 덩치 큰 남자가 혼자 북카페에서 우리 이름을 쓰고 하트를 그렸을 상상을 하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분홍색이었던 글씨가 투명해졌다.
“어?”
“어?”
동화 씨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시그니처 음료의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사장님이 보고 계셨을까 부끄러워 자리로 돌아왔다.
“글 씨, 바깥 풍경 봐봐요. 진짜 액자 같아요.”
“그렇네요. 다 먹고 산책할까요?”
“좋아요.”
“사장님, 저희 갈게요. 다음에 봬요!”
“글 씨~ 잘 가요~ 동화 씨도 파이팅!”
파이팅이란 말에 의아하면서도 동화 씨와 걸어가는 길이 너무 좋았다.
같은 보폭으로, 같은 방향을 보며,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나아가는 게 행복하다.
“어?”
동화 씨의 손에 레몬 사탕을 쥐여준 채 손을 잡았다.
두 손의 온기로 레몬 사탕이 녹을 것만 같다.
“동화 씨, 우리…”
“글 씨! 제 체면은 살려 주셔야죠. 아무리 요즘 시대가 변했다지만, 제가 오늘만을 얼마나 기다렸다고요.”
“네?”
“우리 정식으로 만나요!”
“하하하하하하……. 네! 잘해봐요, 우리.”
손에 있는 레몬 사탕을 꺼내 동화 씨 입에 넣어주었다.
사탕을 입에 굴리며 말하는 동화 씨가 복화술을 하는 느낌이었다.
“굴 씨, 데가 레모 디저트 무하 리필해 주께여.”
힘들었을 때마다 찾아온 북카페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희망을 얻었다.
마지막 인연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모르지만, 지금의 행복의 흐름을 타고 동화 씨와 햇살처럼 나아가고 싶다.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하루하루 이렇게 평화롭게.
나의 유의어가 새로 탄생했고, 우리의 소중한 순간이 ‘기억’ 책의 한 페이지로 그려졌다.
-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