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by 앤N

- 피유웅

어느새, 아니 벌써, 세부에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글 씨~”


원래 동화 씨가 저런 댕댕이 스타일이었나…?

바글바글한 인파 속에서 ‘한글’이라고 커다랗게 적어둔 A4용지를 흔들고 있는 거대한 남자가 부끄럽기보다 귀여워 보였다.


“동화 씨, 마중 나와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이거.”

“세부에서 배달 온 레몬 사탕이네요?”

“제가 동화 씨 레몬에 위로를 많이 받아서, 저도 드리고 싶더라고요.”


“감사해요. 잘 먹을게요. 근데… 2개월 동안 더 예뻐졌네요? 세부가 잘 맞았나 봐요.”

“뭐래~ 고마워요. 아침 먹었어요?”

“아뇨! 같이 먹어요. 고사리 해장국 어때요?”


“그거 제주에서 유명한 거 아니에요? 인천에도 있어요?”

“있더라고요. 제주 출신 사장님이 하시는데 아침 시간에만 영업하신대요.”

“오~ 기대되는데요? 가봅시다!”


우리가 어떤 관계라도 되는 양 편안하고 포근한 대화가 이어졌다. 처음으로 탄 동화 씨 차에서 낯선 듯 익숙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2개월 동안 엄청난 변화가 있을 리 없었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2명이요.”

“자리 이쪽으로 안내해드릴게요.”


“고사리 해장국 2개 주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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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씨, 여기 진짜 사람 많네요.”

“그쵸? 맛집이래요. 잘 지냈어요?”

“네. 똑같이 도서관 가고 북카페 가고 시나리오 쓰고 글 씨 기다리며 지냈어요.”

“하하하…. 아 참! 할 말 있다고 했죠?”


“아, 네! 저 시나리오 뽑혔어요!”

“네? 진짜요? 우와! 동화 씨! 너무너무 축하하고 고생 많았어요! 고사리 해장국 먹을 때가 아니잖아요! 파티해요, 파티!”


“밥은 먹어야죠! 저 여기 글 씨랑 엄청나게 오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엄청 큰 공연은 아니고, 대구 소극장에서 제 글을 좋게 봐주셔서 한 달 정도 해보고 좋으면 연장하신다고 하셨어요.”

“무슨 걱정이에요~ 동화 씨라면 무.조.건 연장됩니다! 밥 먹고 카페라도 가서 케이크 불어요! 동화 씨 진짜 멋지다, 최고!”


“이렇게 저보다 격하게 좋아해 주니까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다 글 씨 덕분이에요.”

“제가 뭘 했다고요~”

“글 씨 만나고 글이 술술 써지더라고요. 이름도 ‘글’이라 그런가? 하하. 저에게 갑자기 행운이 굴러들어온 느낌이었어요. 이야기도 저희 만났던 걸 각색해서 썼거든요.”


“네? 진짜요? 더 궁금한데요!”

“공연 올라가면 저랑 같이 보러 가요. 글 씨랑 첫 공연 같이 보고 싶어요.”

“좋아요!”


한층 상기된 얼굴로 고사리 해장국을 맞이했고, 뜨끈한 국물에 얼굴은 더 붉어졌다.

어느새 봄이 오고 있었다.


동화 씨는 나를 집에 데려다주고 시나리오 회의를 위해 떠났다.

현관 비밀번호를 열고 급하게 신발을 벗고 소파에 누웠다.


하~ 살 것 같다.


2개월이나 비운 집인데 깨끗하다. 엄마 요정이 다 큰 딸을 위해 어제 하루 종일 청소를 했다고 한다.

캐리어를 풀고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장을 보러 나섰다. 편지함에 급하게 들어가느라 못 봤던 우편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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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뒤 나에게 보내는 편지’


1년 전, 지혁이와 데이트를 하다 1년 뒤에 배송된다는 내용이 재밌어 보여서 자신에게 각자 편지를 썼다.

휴. 서로에게 보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나 뭐라고 썼더라.


- 1년 뒤 글아, 안녕? 지금도 지혁이와 같이 있으려나?

아빠의 반대를 무릅쓰고 힘들게 공부했던 입사 준비가 스쳐 지나가네. 취직 축하해!

원하는 곳에서 일하는 거 진짜 기적이다! 회사는 어때?

네 능력을 최고로 발휘해서 초고속 승진도 했니? 네가 원하던 파견 근무도 갔는지 모르겠다.

학생 때도 일하느라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을 못 간 걸 아쉬워했던 너잖아. 너라면 꼭 이뤘을 거 같아.

못 이뤄도 괜찮아. 너는 그냥 너라서 괜찮고, 멋져. 1년 뒤에도 지금이랑 비슷하게 살고 있을 거 같긴 한데, 어떤 게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또 다른 기적을 기다리며 1년 재밌게 보내볼게. 1년 뒤의 글아, 늘 응원해! 난 항상 네 편이야.


얼굴에 있는 모든 세포가 옅게 파르르 떨리는 느낌이었다. 지난 1년이 필름 인화지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거 재밌는데? 또 1년 뒤 나에게 보내고 싶다.’


장을 보고 돌아와서 밥을 먹고 푹 쉬다 해가 질 때쯤 동화 씨에게 전화했다.


“글 씨!”

그러고 보면, 동화 씨는 내 전화를 항상 반겨준다. 그냥 여보세요라고 하는 법도 없다.

내 이름을 누구보다 사랑스럽게 느끼게 해 준다.


“동화 씨, 저녁 먹었어요?”

“네! 오늘 미팅이 2건 있어서 점심도 저녁도 밖에서 먹었어요. 글 씨는요?”


“저도 먹고 전화했어요. 오늘 많이 바빴겠네요.”

“괜찮아요. 꿈에 가까워지니 행복해서 더 바빴으면 좋겠어요.”


“역시~ 동화 씨처럼 노력하는 자에게 기적이 반응하네요. 그렇게 되면 앞으로 많이 못 보겠다, 그쵸.”

“네? 우리요? 아니요? 글 씨 보는 시간이 우선이죠.”


“네?”

“네?”

“네?”

“네?”


티키타카 같기도 하고 불협화음 같은 핑퐁 같기도 한 둘의 ‘네?’가 반복되다 같이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동화 씨, 내일 저녁에 시간 돼요?”

“엄청 돼요! 다음 날 시간까지 빌려서 늘여둘게요.”

“못살아, 진짜. 2개월 동안 능글맞음이 업그레이드됐네요.”


“2개월 동안 많이 그리웠거든요. 내일 7시쯤 길모퉁이 북카페 앞에서 볼까요?”

“네. 능글맞음 더 장착해서 나와요~”


이젠 진짜 말하고 싶다. 내가 기다리던 또 다른 기적은 동화 씨라고.

내 인연이 동화 씨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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