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by 앤N

- 빠빠 빠빠빠 빠! 굿모닝~


“……”

“한! 글!”


아빠는 나를 부를 때 꼭 성을 붙여 스타카토 마냥 한 글자씩 강조했다.

나는 잘 모르겠고, 한글을 너무 사랑하셔서 그렇겠지.


“말씀하세요.”

“아빠, 세부다.”


갑자기 세부라는 아빠의 말씀에 당황했다.


“잠깐 볼 수 있나?”

“저 곧 한국 가요. 한국에서 봬요.”

“네 숙소 근처다.”

“…어디신데요?”

“corner cafe 있는 길거리야.”

“네? 저 지금 그 카페예요. 들어오세요.”


‘corner cafe’라는 말에 놀라 아빠의 침입을 허락했다.


“Hello. This is corner cafe.”

“Hello.”


“블랙 티 한 잔 주세요.”

“네! 자리에 계시면 가져다드리겠습니다.”


“한! 글!”

“여긴 어쩐 일이세요?”

“한국어학과 대학 수업하고 학생들 겨울방학이라 잠깐 왔지. 너도 볼 겸.”


아빠는 어릴 때도 말도 없이 해외로 떠나곤 했다. 그것도 최소 1년씩.

덕분에 엄마가 날 혼자 키우느라 고생했다.

지친 엄마와 아빠는 얼마 전 이혼했다.

아빠는 내 부전공이 한국어교육과란 것도 모른다.


“네… 이번엔 필리핀 초빙 교수인가 보네요.”

“그래. …아빠가 자주 해외에 가서 싫었지?”

“뭐, 다 지난 일인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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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찻잔을 쥔 손을 잘게 떨며, 한참 동안 창밖만 바라보셨다.

목울대가 몇 번이나 울렁거린 뒤에야 겨우 입을 떼셨다.


"……미안했다."

"네?"


평생 듣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말. 아빠의 사과를 난생처음 받았다. 못 들을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젊을 땐 아빠가 맞는 줄 알았어. 내 인생에도 정답이 없는데, 너한테 강요해서 미안했다. 당시엔 우리 집안의 대를 이어 네가 한글학자가 되길 바랐어. 그런데 지금 스스로 진로를 찾아 취직도 하고 단기 파견도 온 너를 보니 대견하구나.”

“네… 저도 고집부려서 죄송했어요.”

“아니다, 지난 일을 떠올려보면 부끄럽구나. 너도 세부에 있다기에 꼭 전하고 싶었다.”

“감사해요….”


아빠의 블랙 티가 분홍색으로 변하는 느낌이었다. 아빠에게 닫혀 있던 내 마음도 조금씩 투명해졌다.

그래, 우린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였지. 부모와 자식 간에도 안 맞을 수 있지.

타이밍이 맞지 않아 돌고 돌아왔지만, 한 번의 사과에 풀린 걸 보면 가족의 힘은 결코 약하지 않나 보다.


“한국은 언제 가니?”

“이번 주말에요.”

“그래, 조심히 가고. 아빠 한국 가면 보자.”

“네. 짐 싸야 해서 먼저 일어날게요.”


짐 핑계로 먼저 자리를 떴다. 갑자기 어색한 사이가 급격하게 좋아질 순 없으니까. 속도를 맞춰 함께 노력해야겠지.


"사장님, 안녕히 계세요. 반가웠어요."

"네! 글 씨. 건강하시고 한국 돌아가면 동생에게 안부 전해줘요."


corner cafe를 나오기 전 입구에서 miracle book을 봤다. 사장님은 메뉴뿐 아니라 소품도 공유하시나 보다. 세부의 기적 책에서 분홍색 글씨를 봤다.


- 사랑하는 아이와 다시 잘 지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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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처럼 두 달 머물다 보니 짐이 별로 없었다.

두 달간의 생활이 캐리어 하나에 들어간다니, 개운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동네를 느끼고 싶어 산책을 했다.


다시 이 땅을 밟아볼 수 있을까.


조용한 거리에 이따금 짹짹 울어대는 새소리도, 태양이 지나간 붉은 그림자를 머금은 하늘도, 다 소중하게 느껴졌다가 동시에 부질없다고 여겨졌다.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왜 태어났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생각해 보니 반항심도 있었던 것 같다.

엄마에게 화내는 아빠의 말을 거스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외국어가 좋아서 선택한 진로고, 원하는 곳에 취직도 했다.

그런데 왜 난 돌아가기 전에 이런 의문이 드는 걸까.


아무 생각 없이 목표만 향해 달리다 잠깐의 쉼이 주어지니 오히려 머리가 복잡하다.

그래서 엄마는 종일 일만 했나 보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잠깐 쪽잠이 들었다.


- 빠빠 빠빠빠 빠 굿모닝


“흐아암~ 여보세요?”

“아고, 글 씨. 제가 자는 데 깨웠나 봐요.”

“아녜요, 동화 씨. 저 곧 나가야 해요.”


“새벽에 타면 내일 아침 7시 도착이죠?”

“맞아요.”

“제가 데리러 갈게요.”

“엥? 아니에요~ 택시 타고 가면 돼요.”


“할 말도 있고 보고 싶어요.”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보고 싶다고 말하는 동화 씨의 말에 나는 계속 처음 들은 듯 부끄럽다.

할 말이란 뭘까. 나와 같은 마음일까.


“…네. 도착하면 전화할게요.”

“조심히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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