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달리던 일이 끝난 뒤에는 기쁨보다 적막이 먼저 도착할 때가 있다.
AI 영상 공모전을 준비하던 시간 동안 나는 처음으로 AI툴을 제대로 다뤄봤다.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분명 재미도 있었다. 내가 상상한 장면이 화면으로 구현되는 순간은 신기했고, 새로운 세계의 문을 조금씩 여는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물은 좀처럼 쉽게 나오지 않았다. 수정하고, 다시 만들고, 또 수정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몰입은 깊어졌고, 그만큼 마음도 지쳐갔다. 그렇게 마감 직전까지 오롯이 한 가지에만 매달린 뒤, 제출을 끝내고 나서야 나는 이상하리만큼 텅 빈 마음과 마주하게 됐다.
가끔은 멍해지기도 했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싶기도 했다. 학원에서도 계속 컴퓨터를 붙들고 있었고, 집에 돌아와서도 잠들기 직전까지 노트북과 씨름했다. 공모전 마감일 전날까지, 어떻게든 제출만은 하겠다는 마음으로 버텼다. 그 시간 동안 나의 시선은 오롯이 그 공모전 하나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긴장과 몰입의 시간을 지나고 나니, 후련함보다 공허함이 먼저 밀려왔다. 분명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여전히 많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영상 강의도 들어야 하는데 막상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열심히 달려온 뒤에 갑자기 트랙이 사라진 사람처럼, 마음이 잠깐 허공에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어제는 급성 인후염 때문에 이비인후과에 다녀왔다. 학원도 조퇴하고 집에서 푹 쉬었더니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오늘도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집에만 있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무언가를 붙잡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노트북을 챙겨 집 앞 카페에 나왔다.
그런데 막상 카페에 앉아 따뜻한 유자차를 마시며 멍하니 있으니, 또 같은 생각이 반복됐다.
나 뭐 하지.
뭘 해야 하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지.
달달한 유자차는 분명 맛있는데, 마음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맴돌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 공허함은 게으름이라기보다, 무언가에 오래 몰입했던 사람이 끝난 뒤에 겪는 후유증이 아닐까. 열심히 달려온 사람에게는 멈춘 뒤의 적막도 크게 들린다 했다. 계속 무언가를 붙잡고 있던 손이 갑자기 비게 되었을 때, 사람은 종종 뭘 해야 할지보다 어떻게 쉬어야 할지를 먼저 잊어버리게 된다.
오늘의 나는 어쩌면 대단한 성과가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다시 천천히 나를 움직이게 할 시간이 필요한 걸 지도 모르겠다. 당장 멋진 결과를 만들지 못해도 괜찮다. 카페에 나와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차를 마시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끝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공허가 있다.
그리고 그 공허는,
다음 챕터로 건너가기 전 잠시 숨을 고르라고 주어지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