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정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자주, 가장 강렬하게 경험해 온 감정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불안이었다.
불안은 언제나 아무 일도 없는 순간에 스며든다.
밤하늘이 고요한데도 폭풍이 올 것만 같은 떨림, 메시지를 보내놓고 답장이 오지 않을 때의 조급함, 새벽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버리는 날의 서늘한 초조함.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이미 내 가슴을 두드린다.
순간순간의 불안은 사소해 보인다.
그러나 곱씹어 보면, 불안은 단순한 감정의 파편이 아니다.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을 “자유의 현기증”이라 불렀다. 선택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우리 앞에 펼쳐질 때, 우리는 동시에 그 가능성의 낭떠러지 앞에 선다. 한 발 내딛을 수 있지만, 그 순간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불안은 바로 그 낭떠러지에서 느끼는 아득한 현기증이다.
나는 여러 번 그 현기증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짧고도 긴 순간, 휴대폰 화면을 몇 번이고 켰다 껐다 하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무언가 어긋난 듯한 예감에 잠식되었다. 불 꺼진 방 안에서 홀로 남겨진 밤도 그랬다.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 올 때, 나는 문득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내가 잘 살고 있는 걸까?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그 질문들이 어둠 속에서 메아리치며 돌아올 때, 불안은 더욱 짙은 그림자로 내 곁에 앉았다.
또 한편, 불안은 몸의 작은 신호에서 불쑥 솟아오르기도 했다. 어느 날 팔목에서 느껴진 아주 작은 통증 하나가 시작이었다. 그 통증은 생각보다 쉽게 손가락을 타고 퍼져나갔다. 나는 곧바로 검색창을 열었다. 언제나 그랬듯, 진단은 클릭 몇 번이면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정보는 위로가 아니라 거대한 나선이었다. 평범한 근육통부터 드문 병명까지, 나열된 가능성들은 하나같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귀결되었다. 심장이 빨라지고, 머릿속은 어두운 지도처럼 빨갛게 채워졌다. 작은 통증이 곧 삶 전체를 위협하는 신호처럼 느껴지는 그 순간, 나는 불안이 어떻게 이성의 경계를 넘어 몸을 지배하는지 똑똑히 경험했다.
그리고 지금, 퇴사를 고민하는 나날들은 또 다른 형태의 불안을 주었다. 노트북 앞에서 사직서를 쓰다 멈춘 적이 있다. 문서의 왼쪽 상단에 적힌 날짜가 마음속의 무게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만 같았고, 커서가 깜박일 때마다 “그만두면 이제 나는 뭘 하지?”라는 질문이 파고들었다.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이 마음속에는 가득했다. 작은 꿈들과 오래된 호기심들, 언젠가 해보고 싶던 목록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막상 어느 길을 먼저 택해야 할지, 어떤 한 길에 뛰어들 용기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가능성의 풍성함은 축복이자 저주가 되었고, 그 풍성함 앞에서 나는 오히려 더 마비되었다. 자유가 준 선택지의 무게가 불안으로 변해 나를 짓누를 때, 나는 스스로를 잃을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하이데거는 불안을 “세계와의 끈이 느슨해지는 순간”이라 했다. 모든 것이 낯설어지고, 익숙했던 풍경조차 의미를 잃어버리는 바로 그 순간. 불안은 삶의 틈새로 스며드는 안개처럼 찾아와 우리가 이 세계에 ‘던져져 있음’을 뼈저리게 자각하게 한다. 내가 팔목의 통증을 병명으로 읽어내려가던 그 밤과, 사직서의 커서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아침은 같은 종류의 자각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누구일까.
그 질문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면,
불안은 그 질문이 드리운 그림자였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길 위에 서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불안은 나의 존재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나는 묻는다.
과연 불안 없는 삶이 진정 살아있는 삶일까?
불안은 단순한 적이 아니다.
불안이 없다면 우리는 아마 변화의 첫걸음도 내딛지 못했을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불안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스승이다.”
불안이 우리를 괴롭히는 이유는, 그 안에 아직 펼쳐지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이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자유가 없다면 불안도 없다. 그러므로 불안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유가 남긴 은밀한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예전의 나는 쉽사리 불안에 휩쓸리곤 했다. 작은 공백에도 무너지고, 보이지 않는 그림자에도 주저앉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불안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손님이지만, 나를 무너뜨리려 온 적은 없었다는 것을. 오히려 불안은 나를 잠시 멈추게 하고, 깊은 숨을 고르게 하고, 다시금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나는 여전히 불안을 느낀다.
그러나 그 속에서 천천히 호흡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어느 날은 걸음을 늦추며 길가의 나무를 바라보고,
어느 날은 조용히 글자를 이어가며 마음의 결을 어루만진다.
어느 날은 통증이 시작되면 서둘러 병원으로 향하고,
또 어느 날은 노트북을 덮고 작은 노트 하나만 꺼내어 “오늘은 이것만 해보자”라고 적어본다.
그 사소하지만 소중한 순간들 속에서 불안은 조금씩 빛에 녹아 사라지고, 나는 다시 온전한 나로 돌아온다.
불안이라는 이름의 손님은 여전히 내 곁에 머물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손님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맞이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