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혼밥이 당연한 풍경이 되었지만, 예전의 나는 혼자서 음식점에 들어가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으면 어색했고, 남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하물며 혼자 카페라니. 그것은 내게 낯설고 불가능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와의 약속으로 먼저 카페에 도착한 적이 있었다.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마자 핸드폰 알림음이 울렸다. “미안, 일이 생겨서 두시간 정도 늦을 것 같아.” 순간의 서운함도 잠시, 곧 마음은 알 수 없는 가벼움에 물들었다. 뜻밖에도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생겨버린 것이다. 조금은 설레는 기분으로 책을 펼쳤다.
처음엔 여전히 어색했다. 괜히 시선을 피하려 핸드폰을 만지작거렸고, 아이스아메리카노 잔에 맺힌 물방울만 괜히 손으로 훑었다. 그러나 첫 장을 읽자 신기하게도 활자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삼켰다. 잔을 내려놓는 소리, 낮게 깔린 음악, 사람들의 대화는 점점 멀어졌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고, 고개를 들었을 때 커피잔 속의 얼음은 이미 다 녹아 사라지고 없었다. 차갑던 음료는 미지근해져 있었지만, 내 안에는 알 수 없는 충만감이 뜨겁게 차올랐다. 혼자였지만 결코 공허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처음 알았다. 고독이 결핍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와 풍요로움의 다른 얼굴일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이후 나는 혼자 카페에 가는 일을 조금씩 시도해보았다. 처음엔 여전히 어색했다. 주문을 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리는 것 같아 괜히 움츠러들었고, 자리에 앉아도 불안해서 자꾸 핸드폰 화면만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몇 번을 반복하자 조금씩 달라졌다. 책을 한 장씩 넘기고, 노트에 짧은 문장을 끄적이고, 때로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혼자라는 감각이 고립에서 해방으로, 공허에서 충만으로 서서히 바뀌어갔다. 그 과정은 느렸지만,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확실한 발걸음이었다.
예전의 나는 집에 머무는 것을 잘 견디지 못했다. 조금만 혼자 있으면 금세 우울이라는 홍수에 잠식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무조건 집 밖을 나가 누군가를 만나야만 직성이 풀렸다. 혼자 있으면 무기력해지는 듯한 공허와 불안이 늘 뒤따랐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여전히 집 안에만 있는 걸 썩 좋아하지 않지만, 예전처럼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혼자 카페에 앉아 글을 쓰거나, 강변로를 천천히 걸으며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는 시간이 오히려 나를 지탱해준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강물의 잔잔한 일렁임을 바라보며 “괜찮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이는 순간, 나는 이전에는 몰랐던 평온을 느낀다.
문득 친구를 기다리며 카페에서 읽었던 책이 고독에 관한 책이라는 걸 깨달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기에, 그 고독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 구절이 이상할 만큼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늘 타인의 애정을 갈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연인이든 친구든 언제든 곁에 있어야 했고, 만나지 못하면 곧장 외로움에 빠졌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안다. 내가 갈구해야 했던 애정은 타인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길어 올려야 하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불안이 내 삶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졌을 때, 그것을 조금이나마 견디게 만든 힘도 고독이었다. 불안은 삶을 흔드는 그림자였지만, 고독은 그 그림자를 다른 빛깔로 물들이는 힘이었다.
외로움과 고독은 닮았지만 다르다.
외로움은 타인의 부재에서 오는 결핍이다.
그러나 고독은 자신과 다시 연결되는 충만한 시간이다.
외로움은 텅 빈 방처럼 느껴지지만,
고독은 나를 되돌려주는 방이다.
외로움은 누군가의 부재를 세지만,
고독은 오히려 나의 존재를 세게 한다.
니체는 말했다. “고독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자기 세계를 창조할 수 없다.” 고독은 우리를 고립시키는 감옥이 아니라, 나 자신과 마주하는 가장 정직한 장소다.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짜 목소리를 듣게 된다. 바깥세상의 소음이 잠잠해질 때, 내 안의 목소리가 또렷해진다.
파스칼의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기 방에서 혼자 머물 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나는 오래도록 이 말의 뜻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고독은 우리가 홀로 남겨졌을 때 비로소 배우게 되는 가장 중요한 감각이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완벽하게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확실히 안다. 고독을 회피할수록 외로움은 깊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고독을 받아들일수록, 비로소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을.
외로움은 나를 공허하게 하지만, 고독은 나를 단단하게 한다. 불안이 삶의 틈새로 스며드는 안개라면, 고독은 그 안개를 뚫고 나를 비추는 희마한 빛이다. 나는 아직 그 빛에 온전히 젖어들지 못했지만, 천천히, 아주 조금씩, 고독을 내 삶 속으로 끌어안고 있다.
나는 앞으로 어떤 고독을 살아낼 것인가?
그리고 당신은, 어떤 얼굴의 고독과 함께 걷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