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터 출산까지 모든 검사가 이상 없었다. 그러나 산부인과 원장님께서 아이가 41주째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신체 모든 기능이 미숙아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황달이 심해 태어난 직후 서울 강동성심병원 신생아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 산후조리원에서 매일 울기만 하다가 2주 후, 아이가 드디어 퇴원했다. 그 시점에서는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 믿고 아이를 열심히 돌봤지만, 아이가 심한 아토피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두피에 노란색 덩어리가 계속 생겼고, 온몸이 간지러워서 매일 울기만 했다. 게다가 6개월이 지나도 온몸에 힘이 없었고, 소아과 원장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결국 큰 병원으로 가게 되었고, 신생아 시절에 다녔던 강동성심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도 여전히 아무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교수님께서는 단순히 일반적인 발달 지연으로 생각하셨다. 아들이 8개월이 되어도 몸을 이리저리 돌리지 못하자, 물리치료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원인을 찾을 수 없었기에 교수님께서도 더 이상 해주실 말씀이 없었다. 돌사진을 찍을 때조차 혼자 앉지 못했다. 그때 막막한 나는 아이가 아픈 이유도 모르고 하루하루 약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힘들었다. 심지어 아이가 무호흡증이 있어 자다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수도 있었다.
"우리 아이가 왜 아프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임신했을 때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우울증에 빠졌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일까?"라는 생각이 24시간 나를 괴롭혔다. 그런 마음에서 병명이라도 알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겨, 외국 학술 논문을 뒤지며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여전히 아무 자료나 비슷한 사례를 못 찾는다.
운전도 못 하는 내가 1주일에 3번이나 아기띠로 아이를 안고 경기도 이천에서 서울 강동성심병원까지 재활치료를 2015년까지 다녔다. 아이가 여전히 힘이 없었다. 더 불행한 것은 교수님께서 아이가 심장, 신장, 뼈 등을 포함한 여러 문제들이 있었고 언제 힘이 생길지 알 수 없다고 하셨다. 31개월이 되었을 때, 의사 선생님이 심장기능이 더 나빠지면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하길래 내가 결단을 내렸다. 아들의 건강이 더 악화되기 전에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걷지 못하지만, 나는 내 발로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중에" 건강해지면 가면 된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지만, "나중에" 더 이상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희귀병을 가진 아이에게는 하루하루가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