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비현실적인 것은 따로 있다.
*이번 리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주의 마지막밤. 간만에 조금 부지런히 한주를 맞이하겠다고 밥 짓기를 위해 쌀통을 열었다. 솔직히 이미 불안하긴 했지만 설마 정말일줄이야.... 쌀통 안에서 만난 것은 다름 아닌 "쌀벌레"
정말로 눈물을 머금고 사태를 수습하려는데 제일 먼저 파도처럼 밀려드는 생각
"아.. 나란 인간이 이렇게나 게으른 사람이라니..."
원래도 게으른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강제로 확인 받은 느낌이라 우울하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떠오른 영화는 이번주 개봉작 "리틀 포레스트"
쌀벌레를 앞에 두고 생각하니 이 영화, 그렇게나 비현실적일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특별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예고편에서 핵심 장면은 다 봤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야기 한편을 보았지만 내용이 떠오르기 보다 이미지와 그 감수성이 떠오르는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보는 내내 특별한 스토리 전개가 없어도 다음 장면을 기대하게 만든다. 장면 장면 속에 녹아 들어가있는 따뜻한 시선과 편안한 마음, 섬세함들이 적어도 도시의 직장생활에 찌든 이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위로가 된다.
혹자는 이에 회의적일 수 있다.
"어떻게 삼시세끼 예능처럼 사는 것이 가능한가? 영화니까 저런 상황이 가능한 것이다."
심지어 영화속 인물조차도 이를 날카롭게 찌른다.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돼?"
그에 혜원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혜원의 행동은 이미 관객들에게 막연하지만 확신을 준다. 행복해질 수 있는 자신의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혜원이 이미 찾아냈다는 확신.
혜원의 선택이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 아닐지라도 그 자체로도 응원받아 마땅한 일.
사실은 우리가 받고 싶은 응원을 관객으로서 하게 되는 것이다.
재하나 혜원의 선택이 비현실적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아이러니하다. 왜냐하면 현실 속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다만 할 수 있지만 용기를 내지 못해서 하지 못했던 일. 그저 우리가 비현실적이라고 치부해버려야만 위로가 될 수 있는 그런 일. 포도를 보고 분명 신포도일꺼라고 말하던 여우의 모습이 우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리틀 포레스트 속 혜원이나 재하의 삶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하루의 의미있는 한끼를 위해 밤을 주워서 몇번에 걸쳐 일일이 삶아내고 막걸리 한잔을 위해 그리 공들일 자신이 있는가. 솔직히 쌀벌레 하나 어찌 못하고 게으름에 한심해하는 나로써는 혜원과 같은 정성과 부지런함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