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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 Apr 02. 2019

인생 감기약을 만난 날

뉴욕. 그 이름만으로 설레는 곳. 번외 편

감기약 이야기는 원래는 센트럴 파크 이야기를 쓸 때 함께 쓰려고 했던 에피소드인데, 생각보다는 말이 많아져 따로 남기기로 했다.


뉴욕에 처음 갔을 때 센트럴 파크에 갈 수 없었던 이유는 가려고 계획했던 날 아침 마침 감기에 딱 걸렸기 때문이었다.


뉴욕 일정 중 링컨센터에서 오페라 '아이다'를 보기 직전 스트릿 푸드(아마 할랄 가이즈 같은 음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를 "찬바람 맞으며" 먹은 바로 다음날부터였다. 감기가 시작된 때는.


뉴욕의 1월은 칼바람도 불고 추워도 너무 추웠는데, 오페라 시작 시간이 임박하다 보니 식당에 가기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저녁을 굶을 수는 없어서 사법연수원 동기들과 함께 링컨센터 앞마당에서 바람을 맞으며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추위를 막아줄 건 뜨거운 커피뿐이었다.


그렇게 허겁지겁 밥을 먹은 후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오페라 공연이다 보니 옆옆 자리엔 화려한 레드 컬러 드레스를 입은 키 큰 금발의 여인이 앉아 있었는데, "오 멋지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모습은 패딩점퍼 차림인 것도 스스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기억도 난다. 난 관광객이었고, 뭐 당시 날씨를 고려하면 당연한 옷차림이지만.


그런데,

그 날은 공식 일정이 없고 자유시간이어서 하루 종일 여기저기 다니다가, 추위에 떨며 저녁을 먹었더니만 오페라 시작 30분 후부터 졸기 시작했다.


무려 140불을 주고 산 티켓인데. 2시간을 내리 숙면.

추운데 돌아다니다가 따뜻한 곳에서 하나도 모르는 이탈리아어 공연을 보고 있자니 잠이 안 오고 배기겠는가. 앞좌석에 조금씩 나오는 영어자막은 불친절하게도 대사 전부를 번역해준 것이 아니고 스토리만을 설명하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자막 글씨도 작은 편이라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졸음만 가득.


이때 알았다. 추운 날 관광하고 보는 오페라는 금지라는 것을. 다만.. 라이온 킹은 예외다! 라이온 킹 뮤지컬은 아묻따 봐야 하는 필수코스. 물론 너무 재밌어서.


결국 오페라를 다 보고(라고 쓰고, 숙면을 마치고) 다음날과 그다음 날은 호텔방에서 꼼짝도 못 하고 끙끙 앓고 말았다. 뉴욕 일정 중 자유시간은 며칠이 안 되었는데 이틀 동안 침대 신세라니.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니. 정말 울었던 것도 같다. 속상하니까.

조식은 호텔에서 제공되는 터라, 호텔 안에서 해결이 가능했지만. 감기 걸린 상태에서 목이 아픈데 스크램블과 토스트, 베이컨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목으로 넘기기가 힘든 그런. 국물이 절실했다. 그래서 캐리어에서 컵라면을 꺼내 커피포트를 찾아 물을 끓이고 국물을 남김없이 먹었다. 정말 맛있었던 컵라면. 해외여행을 할 때 라면은 필수라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데 최근에 들은 이야기로는 호텔 커피포트를 쓰지 말라고 하더라. 포트에 양말, 속옷을 삶는 사람이 있단다. 으웩. 그 커피포트는 어땠을까... 아니었겠지..


끙끙 앓아누운 첫날 감기약이 없으니, 일단 약을 사기 위해 어떤 감기약이 좋을지 검색했다. 검색을 마친 후 호텔(브루클린이었다) 근처 드럭스토어를 찾아봤는데 다행히 호텔 근처에 작은 잡화점이 있었다, wallgreene이나 duanereade 같은 곳은 아니었고 동네 작은 구멍가게 비슷한 곳이었다.


호텔에서 나와 불과 200미터 정도만 걸어가면 되는 큰길에 그 가게가 있었다. 정말 5분 거리 정도? 그런데 처음 가본 미국, 그것도 뉴욕에서 비 오는 흐린 날에 혼자 밖에 나가는 것 자체에 살짝 겁이 났다. 그래도 약이 필요하니 용기를 일발 장전하고 호텔 밖을 나섰다. 잡화점 근처쯤 가니 비로소 안도가 되었다. 후다닥 가게로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브루클린의 나름 번화가에서 겁을 냈던 내 모습에 웃음이 나지만, 처음 뉴욕의 이미지는 지금과 달리 너무 정신없고 더럽고 왠지 무서운 곳이었으니까. 이런 느낌 때문에 뉴욕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휴양지 느낌의 서부보다는 동부의 활기찬 분위기를 사랑한다.


어쨌든 그 작은 잡화점에서 나의 인생 감기약 DayQUIL, NyQUIL을 찾았다.

이젠 데이퀄은 없고, 나이퀄만 약 서랍에 모셔져 있다.

낮용, 밤용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밤용 감기약은 잠이 솔솔 잘 와서 숙면을 취할 수 있다. 물론 잠이 오는 건 특정 성분의 부작용이지만, 때론 부작용이 이렇게 유용하고 반가울 수가 없다.


아프면 자꾸 밤에 깨게 마련인데 이걸 먹으니 아침까지 깨지 않고 푹 잘 자서 다음 날엔 감기가 한결 나아졌다. 결국 데이퀄,나이퀄은 미국에 여행 갈 때마다 쟁여오는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2017년 가을 샌프란시스코로 휴가를 갔다가 이 감기약을 한꺼번에 5통 정도 샀더니 중국인 캐셔 아주머니가 아이디(신분증)를 달라고 했다. 여권을 보여주니 오케이 했는데, 아마 마약용 아니면 수면제로 사용할까 봐 나이 확인을 했던 것 같았다.


나중에 미국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미국 드라마 중에 Breaking bad라는 드라마 이야기를 했다. 나도 몇 회정도 보았던 적이 있는데 내 취향은 아니라 시즌 정주행을 하지는 않았지만. 시중에 판매되는 약으로 마약을 제조하는 화학 선생님과 제자 이야기인데, 그런 가능성 때문에 물어본 것 같다고 했다. 음, 그랬던 건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화학은 내 전공이 아닌걸!


아. 다시 브루클린에서 벌인 감기와의 사투로 돌아와서.


감기가 최고로 심하던 첫날은 침대에서 요양을 했지만, 그다음 날까지 계속 침대에서 요양하기가 시간이 너무 아까워 점심을 먹고 혼자 나가보기로 했다. 이미 오전 일찍 다른 일행들은 각자 원하는 장소로 나갔기 때문에 호텔에 남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사법연수원의 국제 형사법학회 지도 교수님께서는 절대 혼자 다니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던 터라 잠시 고민했지만, ‘언제 또 뉴욕에 오겠어? 일 시작하면 여행 오기도 힘들 텐데..’라는 마음으로 호텔 밖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죄송해요. 교수님!)


일단 점심을 먹고 나가기로 했다. 점심 역시 컵라면으로!! (그때 컵라면이 없었다면 기력이 없어서 혼자 나가는 걸 생각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국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첼시마켓에 가기로 했다.


물론 한 번 더 고비는 있었다. 혼자 지하철 타기 미션.

지하철역이 워낙 오래되고 지저분하다 보니, 지하로 들어가면 왠지 무서웠다. 그리고 괜히 옆에 서있던 껄렁한 남자애들이 혼자 있는 날 쳐다보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시비 거는 거 아닐까 하면서.


다행히 혼자 하는 반나절의 여행은 아무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첼시마켓을 둘러보고 Anthropology에서 예쁜 스웨터도 사고, 그 와중에 커피도 마셨다. 저녁을 뭘 먹었는지는 기억에 없어서 인상 깊지는 않았던 걸로.


이 날이 아마도 나에겐 혼자 하는 여행의 두려움을 깨고, 새로운 재미를 깨닫게 해 준 첫날이 되었다.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한 첫걸음이었다.


잊지 못할 추억이 된 미국 감기. 독한 미국 감기.


물론 감기가 하루 이틀 만에 낫지는 않았다. 1주일가량 약을 달고 살았다. 어마어마하게 기침이 나와서 힘들었다. 시도 때도 없이 목을 간지럽히는, 먼지 먹은 느낌이 괴로웠고, 일행들한테도 감기가 옮을까 노심초사하기도 했다.


그나마 나이퀄을 먹고 간밤에 푹 잘 수 있어서 예상보다는 회복 속도가 빨랐지만, 첫 뉴욕 여행을 망칠뻔한 사건이었다.


나이퀄의 성분을 이야기해보자면, 아세트아미노펜(진통, 해열 성분), 덱스트로메트로판(기침 억제제), 독시라민 숙신산염(항히스타민제인데, 감기약 말고 단독 성분으로는 수면유도제로 쓰인다고 한다)으로 되어 있다.

cold&flue 용이라고 쓰여 있는데, 더 센 severe cold&flue 용이 따로 있다.


일반 데이퀄,나이퀄은 액상 타블렛이고 severe용은 그냥 타블렛이다. 먹어본 결과 일반과 severe용의 차이는 모르겠다. 액상이 아무래도 흡수가 빠르다.


사람마다 아세트아미노펜이 잘 듣는 경우가 있고, 이부프로펜이 잘 듣는 경우가 있다. 또 두통이나 감기, 생리통 등 증상에 따라 어떤 성분이 더 효과가 있는지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본인에게 잘 맞는, 또는 상황에 잘 맞는 약을 찾는다면 불필요한 약물 남용도 방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

왼쪽이 예전 패키지. 오른쪽은 요즘 패키지 모습.

아. 그리고 미국에서 영양제가 조금 저렴한 편인데, 그중 아사히베리 캡슐은 MJ언니 추천으로 입문한 건강기능식품. 항산화 효과가 있고, 비타민도 풍부한 아사히베리 가루가 들은 캡슐인데, 홀푸드마켓에서 샀었는데 파는 곳은 변동될 수도.

가격은 1200mg짜리 60 캡슐에 10불 미만이었던 것 같다. (아이허브에도 있는데 1만원 정도)


감기 예방과 노화방지를 위해 한동안 꾸준히 먹었는데 효과 만점이었다. 여행 시 쇼핑리스트로 추천!


번외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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