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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책처럼 곁에 두고 읽는다면

내 서재에는 몇 권의 책이 꽂혀있을까?

by Alienwitch


책과 통조림의 차이점


책과 통조림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책은 구입날짜를 찍어 준다. (대형서점일 경우에) 하지만 통조림은 유통기한이 찍혀있다.



사람들은 만날 때, 인연이란 마치 책처럼 처음 만난 날짜를 찍은 후,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어느새 희미하게 유통기한이 새겨지기 시작한다. 그럼 처음 만난 날은 지워지고 그 자리를 유통기한이 차지하고 마는 것이다. 난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산건 책이 아니구나 통조림이구나 하고 깨닫는다.



'이유'라는 라벨을 떼면


대게 그런 경우는 '이유나 목적'이 있어서 만들어진 인간관계다. 무슨 무슨 동호회, 회사 동료, 주민모임 등. 같은 이유나 목적의 집합 속에 묶여 있어서 필연적이란 울타리 안을 공유하는 것이다.


영화 '중경삼림'의 한 장면


하지만 이 인연의 목적이나 이유가 사라지면 그 보이지 않던 결속의 고리는 느슨해진다. 더 이상 만날 이유, 연락할 이유, '만나고 싶어 할' 이유까지 사라지게 된다. 이성에 결합된 것이건 감성에 결합된 것이건 이런 명분이 사라지면 유통기한 찍힌 인연의 통조림이 선반 위에 하나 더 추가된다.

영화 '중경삼림'의 주인공처럼 유통기한을 만년으로 하고 싶지 않을 바에야 고만고만한 짤막한 인연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별안간 소설, 수필, 시나 희곡작품이라고 생각했던 책들이 옥수수 통조림, 복숭아 통조림, 파인애플 통조림으로 돌변한다.

이것은 필자도 예외는 아닌 듯싶다.



'때문에'가 '그냥'이 될 때까지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그냥' 만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초등학교 동창, 15년 된 동네 친구, 10년 된 군대 동기 등 사람들이 그냥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되려면 서로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만남에 '시간'의 개념이 추가된다. 일찍이 이유가 있고 목적을 같이 했지만 서로 함께한 시간이 그런 만남의 '이유'를 녹여내고 '그냥'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출처 : 구글


하지만 시간만 필요한 걸까? 아마도 거기엔 상대방에 대한 애정도 필요할 것이다. 그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인간관계의 핵심과도 맥락을 같이 하지만)

"이건 내 책이야. 비 오는 날 잃어버릴 뻔도 했던, 1~2만 원 비상금도 간직해 준, 대학교 입학 때 산 내 책. " 이유가 사라진 조건 없는 인연에 특별함이라는 요소를 넣으면 그처럼 유통기한이 있는 통조림은 되지 않을 것 같다. 자주 읽을 일이 없다고 세상에 단 한 권뿐인 한정판이나 초판본을 마구 버릴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오늘 나는 책을 읽고 있나, 아니면 통조림을 따고 있나? 그만큼 사랑도 우정도 친분도 지키기 힘들다. 다시 꺼내 읽는 책처럼 찾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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