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은 남들도 나도 똑같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념우표가 17일 오늘 발행됐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인기 있을 줄은 몰랐다. 우체국마다 사람들로 북적였고 인터넷우체국 홈페이지에서 판매하는 기념우표 16만 장은 2시간 만에 품절됐다.
아침 5시 30분. 전날 일부러 맞춰놓은 알람이 울렸다. 어느 정도 여유 있게 준비를 하고 우체국으로 향했다. 직장이 우체국 근처라서 출근하는 와중에 잠깐 들러 사면된다고 생각했는데 이거야말로 오산.
8시 20분쯤 도착했을 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체국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한편 우체국 셔터문 앞에는 눈에 익은 우체국 직원분이 나와서 번호표를 나눠주고 있었다. 번호표까지? 하며 받아 들었는데 80번!
80번까지 나누어 주려면 대략 9시부터 얼마나 걸릴까 하면서 초조하게 시간을 가늠하고 있는 와중에 정신도 차릴 겸 가만있을 수 없어서 커피도 사서 마셨다. 시간이 이렇게 더디게 느껴진 적이 있었나. 조바심 나서 번호표를 보고 또 보고. 시간도 확인하고. 아이스커피를 잡은 손에 물기가 있어서 구겨지는 번호표를 몇 번씩이나 지갑에 끼워뒀다가
다시 꺼냈다.
전문 우취인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우표는 드문드문 내 우표첩에 족적을 남겼다. 중구난방으로 마운트에 끼워서 '일단 보관'만 하게 된 우표들. 이번 19대 대통령 취임 100일 기념우표는 내 우표수집에 있어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이다. 이 정도로 우표가 '대란'인 적이 있었나? 우체국 앞에 운집한 사람들을 보며 며칠 전 읽은 기사가 떠올랐다. 명동의 30년 이상된 우표상을 인터뷰한 내용인데 모처럼만에 활기를 띌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예전으로 회귀한 느낌도 든다. 한창 90년대 취미우표가 활발할 시절로 말이다.
이런저런 기대와 회상에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어느덧 9시가 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 한다!
1번부터 10번까지 10명 단위로 끊어서 입장(?)했다. 평소에는 우표 판매창구가 하나였지만 오늘은 특별히 하나 더 임시로 개설됐다. 그래도 처리속도는 역부족. 초조한 가운데 상황을 보려고 뒷문으로 입장했다. 뒷문에는 대통령 우표를 구매하려면 앞에서 번호표를 받아야 하며 뒷문으로 와서 (번호표 없이) 구매는 불가능하다 안내문구가 있었다. 어찌 됐든 난 번호표가 있으니 입장.
지루한 줄 서기와 번호를 확인하고 없는 번호는 건너뛰는 과정이 진행 중이었다. 몇 번씩이나 상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10시가 되어가는 우체국 시계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드디어 70번대.. 잡고 있던 커피를 더 이상 가지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화장실에서 재빨리 쏟고 뛰어왔다. 78번, 79번... 80번 손님!
그 순간도 믿어지지 않아 어안이 벙벙해서 창구로 가서 직원들의 안내를 기다렸다.
시트지 5장과 전지 3장이 큰 봉투에 담겨 세트로 판매되고 있었다. 그리고 받자마자 작업 시작.
우선 친구에게 보낼 편지에 시트지 한 장을 희생시켜 붙였다. 그리고 접수를 했다. 접수 직원은 일부인을 찍고 '이것도 잘못 찍으면 큰일 나지... 자, 잘 찍혔죠?' 하고 웃었다. 옆에서 보고 계신 어떤 손님은 '야~이거 나중에 몇 억 되는 거 아냐, 버리면 안 되겠네! 하며 농담을 하셨다. 국제 초일봉투! 내가 만든 게 바로 그거다.
어설프지만 초일봉투를 만들고 싶어서 점심시간에 다시갔다. 예상치 못하게 그때까지도 판매 줄이 서있었다! 사람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봉투를 사고(봉투가 떨어져서 판매하는 사람을 기다렸다;) 일부인을 찾고 또 찍는 연습도 하고.. 그리고 드디어 초보티 나는 초일봉투 완성.
소위 현실 피켓팅(피튀기는 티켓팅)을 방불케 하는 전쟁 같은 하루였지만 저마다 취미로, 판매용 또는 재테크용으로 구매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표의 열기를 느낀 기억에 남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