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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진화를 거슬러 사람을 사귀는 방법

우리는 저마다 한 마리의 연어다

by Alienwitch
포유류는 소수의 자손을 낳고 힘을 쏟는다

인간을 포함한 덩치 큰 포유류들은 대부분 소수의 자손을 낳지만 생존율이 크다. 소수의 자손을 낳고, 양육에서 힘을 쏟는다. 하지만 양서류나 어류는 다수의 알을 낳지만 집중적으로 돌보는 일은 없다.


구분이 확연히 가지 않는가?

종족을 보존하고 자기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방법의 차이가...


21세기의 사는 우리들이 우리만의 '흔적'을 남기거나 또는 '관계 속의 생존'을 위해 택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전자일까, 후자일까.


어떤 사람들을 보면 동호회도 몇 개나 되고 휴대폰에 저장된 사람들도 수 백 명이나 된다.

이들의 SNS 친구 목록을 보면 손가락을 가볍게 툭하고 튕길 때 그 목록은 끝도 없이 내려간다. 이 많은 사람들을 다 만나냐고? 실제 그런 사람은 아마 드물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일 년에 안부 인사를 하는 사람은 절반 정도밖에 안 될 거고 직접 만나서 밥 먹고 술 마시는 사람은 또 그의 절반 정도?


그런데도 끊임없이 사람을 찾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려는 이유는


그 수많은 연연의 가닥이 시간에 색이 바래고 삭아 거의 다 끊어져도 딱 두세 가닥쯤은 남겠지 싶어

확률을 올리려고..

심심하고 외로울 시간의 빈 자리를 그나마 남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하나씩 나누어 채우려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연어와도 같다


필사적으로 회유해서 짝짓기를 하고 또 수없이 많은 알을 낳는 연어처럼, 그렇게 알을 낳아도 몇 천분의 1밖에 채 되지 않는 생존율처럼, 내 곁에 누군가 남기기 위해, 그게 친구든 연인이든 열심히 많은 사람과 친분과 인연을 맺고 산다. 그 수많은 인연 중에 곁에 머무르는 사람을 남기려면 만나는 사람도 많아야 그럴 확률이 높아 지니까.


나는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인연을 만드는 방식이 마치 '어류나 파충류'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포유류의 방식' 보다는 그 한참 전 단계의 방식을 택하는 것일까? 인연을 만드는 방식은 진화와는 달리 그 역으로 성립하는 경우가 효과적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오히려 진화를 거꾸로 거스르는 비효율적인 퇴화된 방식을 택하는 것일까?


인터넷이 발달하기 이전 통신수단이 진화하기 훨씬전에는 오히려 '소수의 사람'에게 관계의 힘과 유대감을 바탕으로 한 애정을 쏟았다. 아마도 그때는 지금과 달리 그런 방식이 관계의 생존에 유리한 또는 유일한 방법이라서 그랬으리라.


가끔 균형도 필요하다


시대착오인지 아님 유리한 방법인지 아닌지는 나 스스로 체득할 수 없지만, 내가 가진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중 대부분이 바로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물론 이건 자의와 타의(나도 가끔 외향적으로 행동하고 싶다. 하지만 그게 잘 안될 때가 많다.)가 섞여서 만들어진 방법이다.

흔히들 그렇게 말한다. 젊을 땐, 어릴 땐 새로운 만남에 집중하고 서로 많이 알아가도 새로운 사람에 끊임없이 욕심을 부린다. 또 그런 것이 재밌기도 하고 부담보다는 기대로 다가온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좀 더 '내 사람'에게 집중하고 새로운 사람보단 만나던 사람이 더 편하다.

내 생각엔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기보다 상처받고 실망하며 조금씩 지치고 무뎌진 탓일 것 같다. 그렇게 되려면 세월이 흐르고 또 나이가 들어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 중에 내가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할 필요를 느끼는 이유는 오히려 알던 사람들을 깊이 알아가는 과정에서 인간관계의 원리 및 이상적인 태도를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다. 새로운 만남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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