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시작한 사랑, 그 백일몽같은 슬픔
2009년 개봉한 영화 '페어 러브'
안성기와 이하나가 주연이다. 포스터부터도 처음엔 짐짓 와 닿지 않는다. 중년남자와 20대 여자..그래서 이게 무슨 얘기냐고...할지도
카메라 수리를 직업으로 하는 '형만'은 오래전 형만에게 사기를 친 친구 기혁이 남긴 딸 '남은'이를 봐주게 된다. 그러는 중 남은은 빨래거리를 핑계로 형만에게 자주 찾아오고 형만도 처음엔 주저했지만 남은과 연애를 하게된다.
자칫 불륜보다 못한 치정이나 패륜같아 보이지만 남은을 향한 형만의 순애보는 코믹하기도 하고 순수하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아도 외롭지 않은 인생을 스스로 구축한 남자.
그러다 친구의 부탁으로 가끔씩 찾아 보게 된 남은.
친구의 딸이니까 안 된다고 자신을 다독여 본다.
빚에 쫓겨 다니게 한 아빠가 돌아가셨다. 고양이도 죽었다.
몇 년만에 만난 아빠의 친구인 아저씨는 '예쁘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아는데도 아저씨가 외면하는게 더 야속하다.
50이넘었다고 20대여자와 연애 할 수 없다는 이유는 이렇다. 사랑이 아닌 젊은 여자의 육체에 대한 갈망, 연애를 해도 결혼으로 미래를 꿈꾸긴 힘들다라는 생각, 가치관과 세대 차이 등등.
하지만 형만은 어떤가? 그는 그렇지 않다. 유부남도 아니다. 사랑을 가장한 육체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지도 않다. 어린 남은에게서 대리만족이나 젊은 날의 자신을 찾고자 하는 자기몰입에 치중한 것도 아니다. 남은과 혈연관계나 인척관계도 아니다.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지도 않다.
남은의 마음을 알게된 형만은 '부도덕한 행동'을 지인들에게 고백하게된다. 목사친구에게 고해성사, 수제자에게 전화상담 까지.. 망설이고 또 망설이는 그의 소심함과 동시에 들뜬 마음은 미소를 자아낸다.
너도 좋고, 나도 좋고..피해 보는 사람도 없는데
어렵사리 연애를 하게된 두 사람. 하지만 남은은 형만의 변화와 같이 성장하는 것을 꿈꾼다. 하지만 형만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변화시키엔 늦었다고 생각한다.
"기계 잘 고치는 남자가 좋다며!"
작업실에 머물며 카메라를 고치는 형만을 좋아하지만 새로운 시도도 했으면 하는 남은을 이해하지 못 하는 형만이 던진 말이다. 남은은 기계고치는 형만이 좋으니까 형만 또한 변할 필요가 없는 것.
"꼭 사진작가가 되라고 한적 없어요"
사진작가가 되라고 한적은 없지만 새로운 삶을 살아보는 것, 그래서 계속 성장하는 것을 바라는 남은이 한 말이다.
여기서 두 사람은 어긋난다. 길이 다른 것 처럼.
나이가 남긴 흔적과 앞으로 만들어야 하는 흔적과의 충돌.
같이 성장할 수 있는게 생길 줄 알았어요..근데 항상 외로워요
둘은 결국 헤어지고 남은은 몇년 후에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하고는 가버린다.
그말이 정말 공허한 위로인지 기약인지 모르겠다.
50이 넘어 하게 된 연애가 형만에겐 5월의 백일몽이었는지도.
영화 마지막에 몸이 좋지 않아 검사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형만은 밤이되어 잠을 청한다.
빗소리에 어렴풋이 들리는 남은의 집에 있던 풍경소리.. 몽환적인 영상이 이어지고 남은이 찾아와 나지막하게 말을 건다. 그리고 '우리 다시 시작해요' 라는 말이 시간과 공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어서 반복된다.
어느덧 같이 간 바닷가가 펼쳐지고.. 거기서도 남은은 다시 시작하자고 되뇌인다.
차분하게 잠결에 찾아든 환영을 마주하는 형만, 왜 그렇게도 아련하고 애달픈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열린 결말이라고 믿고 싶다. 좀더 '무뎌진' 모습으로 남은이 찾아 올지, 작업실을 나온 '변화된' 모습으로 형만이 남은을 맞이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