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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부터 시작되는 변화

우분투와 스프링복

'우분투(UBUNTU)'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이 언급해서 유명해진 말이고 '스프링복'은 아프리카에 사는 산양의 이름입니다. 오늘은 사춘기 이야기를 멀리 아프리카로 떠나 해볼까 합니다.


어느 인류 학자가 아프리카 한 부족의 아이들을 모아 놓고 게임 하나를 제안합니다.

저만큼 떨어진 곳의 나무 옆에 싱싱하고 달콤한 딸기 한 바구니를 놓고 누구든 가장 먼저 바구니까지 뛰어간 아이 한 명에게 딸기를 모두 다 주겠노라 약속합니다. 게임이 시작되면 저마다 1등을 하려고 달려갈 것이라 예상했으나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손을 잡은 채 함께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딸기 바구니가 있는 곳에 모두 다다르자 사이좋게 함께 둘러앉아서 입안 가득 딸기를 베어 물고 웃는 아이들. 그들에게 인류학자는 묻습니다. "누구든지 1등으로 간 사람에게 모든 과일을 다 주겠다고 했는데 왜 손을 잡고 같이 달렸느냐?" 그러자 아이들의 입에서는 "UBUNTU(우분투)"라는 단어가 합창하듯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반투족의 말로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한 아이가 이렇게 덧붙입니다. "나머지 다른 아이들이 다 슬픈데 어떻게 나만 기분 좋을 수 가 있는 거죠?" '우분투' 사례는 얼마 전 SNS를 타고 돌며 감동을 주었던 이야기입니다.


'우분투'와는 대조적인 이야기가 또 하나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상징 동물인 산양 '스프링복' 이야기입니다. 순한 초식 동물인 스프링복은 평소엔 평화롭게 풀을 뜯습니다. 무리의 숫자가 커지고 풀이 부족해지면 수천 마리가 풀을 찾아 대이동을 시작합니다. 워낙 숫자가 많다 보니 앞 선 무리가 지나간 자리에 뒤에 오는 무리가 먹을 풀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뒤에 오는 스프링복 들 중 몇 마리가 앞질러 풀을 차지하기 위해 뛰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앞서서 가던 무리들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덩달아 뛰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이젠 수 천마리의 무리가 동시에 달리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한 번 시작된 질주는 멈출 수가 없게 됩니다. 상대방이 뛰니 나도 뛰고 뒤에서 뛰니 앞에서도 뜁니다. 그러다가 낭떠러지를 만납니다. 속수무책 수천 마리의 스프링복들이 그 아래로 떨어져 죽게 됩니다. 이름 하여 '스프링복의 비극'입니다. 왜 뛰는지, 어디를 향해 뛰는지 알 수 없이 뛰다가 함께 공멸의 길을 가게 됩니다.


우리의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는 아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까?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는 우분투입니까? 아니면 어떻게든 남보다 한 발 앞서 달려가 맛있는 풀을 먼저 먹어야 한다고 가르칩니까?

좋은 직장(풀이 많은 곳)에 들어가려면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좋은 대학에 가려면 특목고를 가는 게 유리하고 특목고를 가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선행학습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아이들을 몰아세웁니다. 물론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내 아이의 꿈과 성향, 장점들을 고려하지 않고 남들이 하니까 너도 해야 한다는 방식이 문제가 됩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한 과도한 사교육비가 문제입니다. 그 달리기 과정에서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사춘기가 유독 힘겨운 건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신체적, 정서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는 혼란한 시기엔 건전하게 에너지를 발산할 운동이나 예술, 문화 활동이 필요하고, '내가 누구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성찰할 깊이 있는 독서가 절실한데, 학교와 가정에선 그저 남보다 앞서가기 위한 무한경쟁식 입시만을 강조하고 있으니 삶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달리는 데 나 혼자만 걸으면 밟히거나 무리에서 도태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우분투'는 못 사는 아프리카에서나 필요한 가치라고 치부합니다.


무한질주의 끝이 어디일지 우리 사회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곳이 벼랑 끝인지, 정말 푸른 초원인지,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더 많은 사람들이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성찰을 잃어버린 사회에선 '스프링복의 비극'이 반복될 뿐입니다.

변화는 '우분투'처럼 상생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 손을 잡고 연대할 때 서서히 시작됩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입니다.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고 누리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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