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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불확실성의 시대, 부모의 역할

산울림 7집에 실렸던 곡을 김필이 리메이크한 노래 '청춘'을 들어보셨나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OST로 실리면서 요즘 여기저기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곡입니다. 얼마 전 그 노래 때문에 '세대차이가 바로 이런 거로구나' 느끼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청춘' OST가 주로 가족을 상실했거나 어른으로서의 삶의 무게와 고단함이 느껴지는 장면에 삽입되었기에 저는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습니다.

며칠 전 거실에서 과일을 먹고 있는데 마침 CBS FM에서 '청춘'이 흘러나왔습니다.

"아~어쩜, 노래가 저렇게 절절하냐. 가슴을 후벼 파네, 후벼 파"라고 제가 말하자,

'응팔' 드라마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들이 한 마디 합니다.

"엄마, 무슨 노래가 저래? 축축 늘어지는 게 꼭 장송곡 같다."

그 말에 어의가 없어진 저는 "야, 눈을 감고 가사를 한번 음미해 봐. 넌 저 노래가 안 와 닿냐?


"누구에게나 푸르른 청춘이 있었지만, 피고 지는 꽃잎처럼 언젠간 청춘도 다 가고, 아무리 잡으려고 애를 써도 세월은 그렇게 가는 거래잖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엄마, 아빠에게도 푸르른 청춘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니? 그 사실을 생각하면 막 공감이 되지 않냐? 가사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하지 않냐고?"


열심히 설득하려는 저에게 아들이 툭 던지는 말은 참 무심하기도 합니다.

"그럼 세월이 가야지, 그냥 멈춰있으면 어쩌라고..."

"이 천하에 공감 능력 없는 놈의 시끼~ 네가 드라마를 한 번도 안 봤으니 배경지식이 없어서 그런 거야 " 퉁박을 주었지만, 그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제 19살이 된 청춘은 청춘의 의미와 소중함을 모를 수도 있겠구나.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는 나이가 되어 보기 전에는 세월이 간다는 의미도 그다지 공감할 수 없겠구나'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그 나이가 직접 되어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은가 봅니다. 사춘기 청소년은 부모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아가씨들은 아줌마들을 이해할 수 없고,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으며, 대리는 팀장과 이사님을 이해할 수 없고, 청년들은 나이 든 사람들을 '꼰대'라 부르며 조롱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들이 예전에 주로 하시던 말씀, '그래 너도 내 나이 되어봐라. 그땐 알게 될 거다.' 바로 딱 그 상황입니다.


21세기 디지털 과학기술의 발달로 앞으로 우리 사회는 '디지털 디바이드'에 의한 세대 갈등을 더 심각하게 겪게 될 지도 모릅니다. 지식이 더 이상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모두에게 공개되고 소비되는 세상이기에 예전에는 선배가 경험과 경륜으로 터득한 지식으로 후배를 지도하고 이끌 수 있있다면 이제는 누가 IT기술과 지식정보 플랫폼을 더 능숙하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조직 내 위계질서가 다 흔들려버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두려울 만큼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하버드대를 비롯한 세계 최고 명문대학 유명교수의 강의를 인터넷 등록을 통해 무료로 들을 수 있고 수료증도 받을 수 있는 세상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좁은 울타리 안의 학벌주의와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성공방정식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예전에 배워왔던 방식대로 아이들을 키우려고 합니다. 검색만 하면 금방 찾을 수 있는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단순 암기식 정답 찾기 방식이 계속 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해결력을 지닌 창의적 인재 육성'이라는 현재 공교육의 목표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달성되는지 부모들은 잘 모릅니다. 미래학자들도 10년 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불확실성의 시기를 사는 이때에 부모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 참 난감합니다. 어쩌면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내고 스스로 답을 찾아갈 '시간을 주는 것',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기보다는 아이가 용기를 갖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아낌없는 사랑을 통해 '자존감을 세워주는 것' 그것이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의 전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청춘이, 또 세월이 가는 것처럼 부모세대는 지나갈 것입니다. 아이들은 또 아이들의 청춘과 세월을 살아내야겠지요.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월은 그 아이들의 몫입니다. 훗날 아이들이 부모를 떠올릴 때 '자신들의 인생을 전폭적으로 믿어주고 사랑하고 응원했다'라는 기억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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