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이 나침반입니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중간중간 터널이 나타납니다. 특히 강원도처럼 산간 지역을 통과할 때면 연거푸 터널을 만나기도 하죠. 짧은 터널은 들어가자마자 순식간에 빠져나오지만 긴 터널은 한 참을 가도 터널 속인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터널 중 가장 긴 터널은 작년 6월에 지하 건설공사로 연결된 '율현터널'로 그 길이가 무려 50km에 달한다고 합니다. 57km인 스위스의 고트하르트타 터널과 54km인 일본 세이칸 터널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긴 터널이라고 하는군요. 영국과 프랑스 사이 도버해협 밑을 지나는 '유로터널'보다도 300미터 이상 더 길다고 합니다. 율현터널은 올해 개통될 서울 수서역과 평택을 잇는 KTX 고속철도 구간의 82%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길이도 다양한 지상 터널과 지하터널 덕분에 사람들은 전국을 1일 생활권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터널이 갖는 이런 편리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닥치면 그 시기를 '터널'에 비유하곤 합니다. 터널을 만날 때 평소 준비성이 있었던 사람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플래시를 꺼내 주위를 살피고 관련 지도를 들여다보며 터널의 길이를 계산해서 언제쯤 이 터널을 빠져 나갈 수 있을지 가늠해 봅니다. 그리고 한 발 한 발 묵묵히 걸아나가죠. 그러다 보면 마침내 빛으로 충만한 바깥세상으로 다시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터널이라는 사실을 모르면 방향감각을 잃어버려 주저 않거나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수 있습니다.
사춘기는 자녀가 아이에서 성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거쳐야 할 터널입니다. 어떤 아이들은 짧게 그 터널을 지나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들은 율현터널처럼 길고 긴 통로를 오래도록 지나야 할 수도 있습니다. 사춘기 시기가 점점 빨리 시작되고 더 늦게 까지 이어져서 요즘은 '1024' (열 살부터 스물네 살까지)가 사춘기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특히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입시 준비에 시달리느라 정체성을 고민할 시간이 없다가 20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나는 누구인지,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나의 꿈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연년생 남매를 키우면서 제가 만난 두 아이의 사춘기 터널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큰 아이는 터널을 지나왔나 싶을 정도로 중고등학교 시기를 순탄하게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대학생이 된 요즘에서야 고민이 많아진 눈치입니다. 반면 중학교 1학년 때 시작된 둘째 아이의 사춘기 터널은 꽤 길고 험난했습니다. 큰 아이 경험으로 방심하고 있던 차에 얼떨결에 따라 들어간 터널에서 저는 한동안 길을 잃었습니다. 그곳이 터널이 아니라 미로처럼 느껴져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저를 어두운 터널로 끌어들인 아이를 원망하기 바빴습니다. 다른 집 아이들은 멀쩡하게 사춘기를 통과하는데 우리 아이만 유난스러운 것 같아 아이가 미웠습니다. 원망과 자책과 비난의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느라 터널을 빠져나오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습니다.
터널을 나오고 나니 그때는 몰랐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사춘기 터널에서 부모가 함께 당황해선 안된다. 터널 안에서 소리치고 야단치면 소리가 증폭되어 아이도 부모도 방향감각을 잃어버릴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누구보다 불안해하는 사람은 '아이'다. 그 아이의 불안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최선이다. 손을 꼭 잡고 출구를 향해 계속 걷는 수밖에 없다. 사랑만이 유일한 나침반이다.'
결국 터널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지나가는 곳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면 터널을 지나는 시간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터널을 통과해야 경포대 바닷가도 볼 수 있고 설악산 국립공원에서 신선한 공기와 자연 경치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사춘기 자녀와 함께 터널 속을 지나고 있습니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고 힘내십시오. 아이의 짜증과 불안, 방황과 마주할 때 지도책을 꺼내듯 사춘기 관련 책들을 읽고 공부하시면 한결 수월하게 이 시기를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춘기 터널을 통과하고 난 후 한층 더 가까워진 가족을 만날 수 도 있습니다.
'도닦는다' 생각하고 마음 비우는 연습을 매일 하다 보면 곧 좋은 날이 옵니다.
평안한 나날 되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