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납득이 안 되는 내 아이의 사춘기

지적질 본능을 꾸~욱 누르고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기

몇 년 전 개봉됐던 영화 '건축학 개론'과 예능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 등장했던‘납득이’라는 인물을 기억하십니까? 별일 아닌 일에도“납득이 안돼요. 납득이”를 외치며 관객과 시청자의 웃음을 자아냈던 캐릭터였습니다. 딸이 사춘기에 접어드니 화면이 아닌 현실에서 수시로 ‘납득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도대체 아이가 무슨 생각으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방금 전에 친구와 깔깔거리던 아이가 왜 부모에게는 정색을 하며 짜증을 폭발시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딸은 딸대로 “엄마, 아빠랑은 도무지 말이 안 통해. 부모학교나 어머니학교 이런데 가서 공부 좀 하는 게 어때? 왜 내 말을 그렇게 못 알아 들어?” 짜증 내며 쏘아붙이기 일쑤였습니다. 그 때마다 저와 남편은 서로의 얼굴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습니다. “ 납득이 안돼요. 납득이!”


딸이 중학교 2학년이 된 지 두 달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춘곤증으로 나른해진 오후,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원이 학교 담임입니다. 요 며칠 원이가 교무실에 와서 계속 반성문 쓰고 있습니다. 종례시간에 사라지기도 하고 수업시간에 늦게 들어오거나 수업태도가 불량해서 여러 번 주의를 줬는데도 고쳐지질 않네요. 어머님이 직장 다니시느라 바쁘시겠지만, 조금 신경을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주 시간 되실 때 학교에 한번 오셨으면 하는데요"


잔뜩 주눅든 목소리로 상담 날짜를 정하고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 속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쿵' 하고 떨어졌습니다. 그날 담임선생님의 전화는 연년생 키우면서 16년간 꿋꿋하게 버텨온 직장생활을 송두리째 흔들었습니다. 그 동안의 고생이 다 부질없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고 억울하고 속상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들어서면서 딸이 부쩍 짜증을 내고 까칠해졌다고 느끼긴 했지만,새 학년에 적응하느라고 그런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면 어찌해야하나 혼란스러웠습니다. 상담실에 다녀온 후 저는 아이를 앉혀놓고 말했습니다. " 원이야, 네가 이게 웬일이냐. 너 원래 절대 그런 애 아니잖아. 엄마가 학교에 불려가서 속상한 이야기 들어야겠냐?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해라.'


대부분의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학교 규율을 어기며 엇나가는 아이들을 볼때 반성문을 쓰게 하고 훈계하기 바쁩니다.저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제사 깨달은 것은 그때 제가 정말 했어야 하는 일은 훈계나 감시가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고 읽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앗! 이건 딸이 지금 많이 힘들다는 신호구나. 정말 외롭다는 표시구나. 내가 좀 더 애정과 관심을 쏟아야겠구나’ 결심했어야 했습니다. 지적질과 훈계와 반성문으로는 결코 아이의 마음과 외로움을 다독이지 못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보고 '납득이 안돼'만 외쳤으니 마음을 놓칠 수 밖에요.지금 사춘기 자녀때문에 힘들어하는 분이 있다면 지적질 본능을 꾸~욱 누르고 이번 주말 아이의 눈을 따뜻하게 응시하며 그저 아이의 이야기를 고개 끄덕이며 묵묵히 들어주시는 건 어떨까요? 사춘기 자녀를 '납득'하는 첫 번째 스텝이 될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사춘기, 지랄총량의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