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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갖다 버려!

나도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많은 아이들이 어린 시절엔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엄마만 졸졸 쫓아 다닙니다. '엄마 껌딱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죠. 그러던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들게 되면, 자연스럽게 부모에게서 멀어지고 친구들과 인기 아이돌, 혹은 PC방으로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시시콜콜 엄마와 의논하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던 수다스러운 아이도 갑자기 실어증에라도 걸린 듯, 부모와의 대화를 기피하고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립니다. 사춘기를 '어른으로부터의 독립전쟁'이라고 불러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성장 과정상 당연한 수순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집안에 같은 성별의 형제나 자매가 있다면, 사춘기 신체변화와 감정 변화, 성적 호기심이나 외로움을 함께 의논할 수 있겠지만, 요즘처럼 집집마다 1남 1녀, 혹은 외동아들, 외동딸인 경우가 대부분인 현실에서는 안타깝게도 그 고민이 집안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의 딸 역시 그랬습니다. 초등 저학년까지는 제법 함께 잘 어울려 놀던 연년생 오빠와의 사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 딸은 확연히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오빠와 만나기만 하면 싸움닭처럼 푸드덕거리며 쪼아대기 일쑤였습니다. 예전 TV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문근영이 연기했던 '은서’와 오빠 ‘준서'의 애틋한 남매 모습은 친남매가 아닌 이성이었기에 가능했었나 봅니다. 현실 속의 남매는 마치 사춘기라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지간 같았습니다. 오빠와 다툰 어느 날, 딸은 “엄마, 오빠 갖다 버려! 오빠 싫어. 나도 언니가 한 명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외치며 서럽게 울었습니다. '여동생'이라면 노력해볼 수도 있지만, '언니'는 입양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언니'를 원하는 딸의 간절한 바람은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예전 세대는 형제가 많아 부모가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사춘기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데 지금은 고민을 의논할 형제가 별로 없다는 점이 요즘 아이들의 사춘기가 유난스러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고모, 삼촌, 사촌들과 두루 가까이 살면서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던 웃어른에 대한 공경과 동기간의 우애나 양보를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도시화, 핵가족화, 맞벌이로 인한 어른의 부재가 불러온 외롭고 고집스러운 아이들만 있을 뿐입니다.

사춘기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더욱 동성 가족의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이 시기가 되면 아빠와 딸 사이는 멀어지고, 아들은 엄마를 은근히 무시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과 아빠, 딸과 엄마와의 관계가 건강하고 원만해야 사춘기를 보다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여러분 주변에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급격한 변화 앞에서 그 누구보다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사람은 아이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 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와 감정 변화를 건전하게 발산할 수 있는 통로도 열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운동이어도 좋고, 반려동물이어도 좋고, 여행이어도 좋겠습니다. 주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촌들, 좋은 형, 좋은 언니 등을 자주 만날 수 있게 연결시켜 주는 것도 이 시기를 무사히 지나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3년간 지속되었던 딸의 사춘기 방황이 끝나자 남매는 다시 예전의 돈독한 사이로 돌아왔습니다.

참고 기다리면 결국 좋은 날이 옵니다. 그때 오빠를 갖다 버리지 않길 천만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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