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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전쟁에서 살아남기

서로를 측은하게 바라보기

사춘기 자녀를 둔 집안에는 늘 전운(戰雲)이 감돕니다. 언제 어디서 지뢰가 터지고 폭탄이 날아올지 알 수 없습니다. 딸이 한창 사춘기 지랄 충만한 시기를 보낼 때, 저희 집은 늘 전시상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저희 집만 전쟁통에 부상병이 속출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니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집집마다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씀드리면 "아~휴, 무슨 소리예요. 우리 집은 전혀 안 그래요. 우리 애는 얼마나 착하고 순한데요. 저랑 우리 애는 베프예요. 베~프!"라고 말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인정합니다. 그런 집들 분명히 있습니다. 사춘기 아이가 부모에게 친구처럼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부모는 아이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해주는 듯한 집들 보면 신기하면서도 부럽습니다. 어려서부터 부모가 자녀를 인격적으로 존중해주고, 항상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눠 온 집은 사춘기에도 큰 어려움 없이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간혹 부모가 너무 권위적이거나,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아 엄마가 자식에게만 올인하거나, 또는 아이가 지나치게 내성적이어서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 못하는 경우, 아이는 내면의 갈등을 집안에서 표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춘기에 반항 한번 제대로 못해보다가 나중에 나이 들어 뒤늦게 부모를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차라리 사춘기 남들 반항할 때 묻어서 함께 독립 투쟁하다가 나이 들면 철들어주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도 듭니다. 뒤늦게 방황하는 자녀를 둔 집을 주변에서 여럿 보았습니다. 그러니 사춘기 자녀가 집안에서 적당히 반항하고 적당히 문을 잠가주면 부모는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춘기는 어린아이였던 자녀가 어른으로 가기 위해 부모로부터 독립전쟁을 치르는 시기입니다. 그 전쟁에서 부모와 자녀가 모두 윈-윈 하려면 상생의 전략과 전술이 필요합니다. 딸과 제가 서로의 입장을 항변하며 감정이 격해졌던 날, 저는 딸과의 화해를 시도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지켜야 할 결심을 포스트잇에 적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한동안 그 포스트잇 덕분에 서로에게 평화가 찾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그 포스트잇의 내용은 제 핸드폰 사진 앨범 속에 남아있습니다.


[엄마의 결심]

1. 원이에게 항상 예쁘게 말한다. 2. 원이를 항상 믿어준다. 3. 원이를 위해 매일 기도한다.

4. 어떠한 경우에도 원이와의 대화를 피하지 않는다.


제가 쓴 포스트잇을 본 딸은 귀차니스트 답게 거의 똑같이 따라 썼습니다. 마지막 항목만 빼고요.


[원이의 결심]

1. 엄마에게 항상 예쁘게 말한다 2. 엄마를 항상 믿어준다 3. 엄마를 위해 매일 기도한다

4. 엄마를 불쌍하게 여긴다.


딸이 보기에도 마음고생하는 제가 불쌍해 보이긴 했나 봅니다. 결국 서로에 대한 측은지심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게 만들고 서로에게 예쁘게 말하게 하고 서로를 믿게 하는 것 같습니다. 혹시 오늘도 자녀와 사춘기 전쟁을 치르고 있는 분이 있다면 먼저 자녀를 애틋하고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와 함께 지킬 약속을 포스트잇에 적어보는 건 어떨까요?

장기전은 모두를 패자로 만듭니다. 사춘기 전쟁에서 살아남아 무너진 관계를 재건하려면 양보와 타협이 필요합니다. 이유 불문하고 전쟁은 빨리 끝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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