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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윈디웬디 Apr 10. 2024

이수지 작가의『거울 속으로』

글 없는 그림책이 주는 '난감함과 자유로움'

이수지 작가가 그린 그림책 『거울 속으로』는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와 함께 '경계 3부작'으로 불리는 작품이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것은 물론, 가운데 접지가 있는 책의 물성을 활용하여 대칭적 구도와 경계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그림책들이다. 3부작은 세로 대칭, 가로 대칭, 위아래 대칭 구도로 되어 있다.


『거울 속으로』는 글자가 단 한 글자도 없는 '글 없는 그림책'이다. 글 없는 그림책을 만나면 부모들도 교사들도 당혹스러워진다. 특히 『거울 속으로』처럼 여러 번 읽어도 그림책이 의미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그림책은 더더욱 그렇다.


『거울 속으로』를 천천히 세 번을 보았다. 처음에 봤을 때는 '어라? 이게 뭐지?' 싶었다. 두 번째 봤을 때는 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소녀의 표정과 몸동작, 행동 등을 유심히 살피면서 읽게 되었다. 세 번째 읽고 나서야 조금씩 내 나름의 해석을 달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여러 번 보게 만드는 그림책이다.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질문자가 이수지 작가에게 물었다. "엄마들은 글 없는 그림책을 어떻게 읽어줘야 하는지 고민이 많습니다. 독자들이 글 없는 그림책을 어떻게 즐기면 좋을까요?" 이에 대해 이수지 작가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읽어 주려 하지 마세요. 그냥 아이와 함께 눈이 가는 대로 보이는 것을 이야기하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글 없는 그림책은 외국에서는 “silent book”이라고도 하던데, 사실은 매우 시끄러운 책이에요. 아이가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느라 바쁘거든요. 아이와의 대화로 가득 차게 해 주세요.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지요. 책 한 권으로 2분 동안 읽을 수도 있고 20분 동안 읽을 수도 있어요. 20초밖에 안 걸렸다고요? 그것도 좋아요. 아이는 궁금해져서 다시 책으로 돌아올 거예요. 글 없는 그림책은 글이 콕 집어주지 않기 때문에 열려 있고, 정답이란 것도 없어요. 그림책을 펼칠 때마다 새롭게 시작될 이야기를 기대해요. 매번 다른 이야기가 발견될 것이고, 매번 다른 그림이 보일 거예요. (출처: 채널 예스)

『거울 속으로』의 첫 페이지를 열면 오른쪽 구석에 한 소녀가 웅크리고 앉아있다. 이수지 작가 그림책에 단골로 등장하는 여자아이이다.

소녀는 갑자기 자신과 똑같이 생긴 아이를 발견하고 놀란다.                              


눈을 한쪽만 뜨고 그 아이를 살펴본다. 그 아이도 똑같은 동작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그림 속 소녀의 표정이 생생하다. 이후 소녀는 신기한 듯 여러 동작과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본다. 그럴 때마다 맞은편 아이도 그대로 따라 한다. 마치 거울 속에 비친 아이처럼. 좌우만 바뀌었을 뿐 똑같다. 두 소녀는 서로 가까워지고 춤을 추고 마침내 하나가 된다.

                             

이때 그림은 데칼코마니 기법을 사용하여 표현된다.                              

두 소녀는 가운데 중심을 향해 빨려 들어가고, 어느새 하나로 합쳐진다.                              

그리고 나타나는 파격적인 흰색 페이지!

흰색 바탕 위에 아무 그림도 없는 백지가 그림책 속에 떡하니 들어 있다. 작가 인터뷰를 보니 이 페이지 때문에 이 책 '파본' 아니냐고 문의해 온 서점들이 제법 있었다고 한다.

작가의 의도가 담긴 페이지다. 백지 페이지에 대한 해석을 놓고 독서토론 참여자들의 의견도 다양했다. 분명한 것은 이 페이지를 기점으로 이전의 소녀와 이후의 소녀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이윽고 다시 나타난 두 소녀는 예전과는 다르다.   

동작을 해도 똑같이 따라 하지 않는다. 소녀는 힐끔힐끔 상대방을 보며 이상하게 여긴다. 점점 화가 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소녀를 거부하고 밀어내려 한다. 이때도 책의 가운데 접지를 작가는 아주 영리하게 활용한다. 힘껏 밀어내자 유리 거울이 비스듬히 넘어가면서 와장창 바닥으로 떨어져 깨져버린다. 깨진 거울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부분 또한 독자의 해석이 필요한 부분이다. 다시 혼자가 된 소녀...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리고 첫 장면처럼 바닥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웅크리고 있다. 하지만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소녀의 위치가 달라져 있다. 처음에는 오른쪽, 마지막 장면에서는 왼쪽에 앉아 있다. 두 소녀를 각각 다른 위치로 구분해서 표시했다.



정답이 없는 그림책,
각자의 해석이 모두 정답인 열린 그림책


『거울 속으로』는 독자에 따라 해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그림책이다. 그만큼 열린 그림책이자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책이다. 정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각자의 느낌이 정답일 것이다.


웅크리고 있던 소녀가 만난 또 다른 소녀는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 자신과 마음이 잘 통하는 '단짝 친구'일 수도 있으며, 어린 시절 껌딱지처럼 애착을 형성했던 '엄마 혹은 언니'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 그림책은 등장하는 소녀를 누구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그림책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친구를 사귀는 과정의 우정, 갈등, 외로움 등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가족이나 형제 사이의 애증 관계를 의미할 수도 있다.


어릴 땐 '나는 공주야. 세상에서 내가 제일 예뻐.'라고 말하며 자아상이 긍정적이었던 아이도, 사춘기가 되면서부터 서서히 자기 모습이 미워 보이고,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림책에서도 전반부와 후반부의 변화를 자아정체성의 변화로 해석할 수도 있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변한다. 거울을 깨는 아픔을 겪는 성장통이 따른다. 그 단계를 거쳐야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거울 속으로』역시 이수지 작가 특유의 크리에이티브가 돋보였다. 글자 하나 없이 그림만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그림책이라니. 작가의 섬세한 표현력에 또다시 감탄하게 된다. 다양한 토론 거리와 이야깃거리가 숨겨져 있는 『거울 속으로』를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모임과 토론용 그림책으로 적극 추천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갈 『거울 속으로』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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