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줄의 글에서 시작하는 상상력
<토끼들의 밤>은 이수지 작가가 국내에서는 2013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처음 이 책이 출간된 것은 2003년 스위스에서 였고, 그해 '스위스의 아름다운 책'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스위스에서 처음 출간될 때의 제목은 불어제목으로 <토끼들의 복수 : La revanche des lapins>였다고 하니, <토끼들의 밤>이라는 중립적 제목보다는 직관적이다. 이야기를 추리하기가 용이한 제목이긴 하나, 오히려 <토끼들의 밤>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제목인 것 같다.
<토끼들의 밤>에는 그림책 전체를 통틀어, 글자는 딱 한 줄이 나온다.
책의 속지를 넘겨 처음 나오는 페이지 그림 밑에 한 줄.
어느 뜨거운 여름날,
아이스크림을 잔뜩 실은 트럭 한 대가 지나갔고,
그 뒷 자리에 토끼 한 마리가 누워있다.
'죽은 걸까? 로드킬 일까? 자고 있나? 기절한 걸까? '
첫 장면부터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토끼들의 밤>은 내내 이렇게 그림으로만 이야기를 전달한다.
스토리를 이해하는 것도, 상상하는 것도 모두 독자들의 몫이다.
매 장면에 대한 독자들의 해석은 각각 다를 수 있다.
글 없는 그림책, 정답이 없는 그림책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이다.
아이스크림 트럭 운전자를 가로막은 토끼들의 표정, 역동적인 몸짓 등은 기존에 우리가 생각해 온 토끼들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라서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특히 그림책으로는 예쁜 것, 좋은 것만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부모들이라면 책을 읽어주기전 잠시 망설일 수도 있다.
토끼는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작가의 과감한 그림에서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무섭게 느껴진다는 어른들의 우려와는 달리 아이들은 오히려 토끼들의 표정과 동작에 엄청 신나할 것 같다.
그림책 거의 마지막 장면 즈음 트럭 운전자는 첫 장면에서 토끼가 누워있던 자리에 거의 똑같은 자세로 누워있다.
아저씨는 왜 길 위에 누워있게 되었을까?
그에 대한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다.
떠나는 트럭을 바라보며 토끼들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토끼들의 밤>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볼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그림책이다.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쏟아질 것 같다. 꼭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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