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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윈디웬디 May 07. 2024

마거릿 와일드/론 브룩스의『여우』

우정과 질투, 외로움과 욕망을 이야기하는 그림책

우정과 질투, 외로움과 욕망을 이야기하는 그림책
            


<여우>는 마거릿 와일드가 글을 쓰고 론 브룩스가 그림을 그려 2000년에 처음 출간한 그림책이다. 국내에는 2012년에 소개되었다. 2004년 독일 최고 어린이 문학상, 2006년 국제 아동도서협의회(IBBY)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글도 독창적이지만 그림체가 워낙 강렬해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표지뿐만 아니라 속지에서도 여우가 독자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어 살짝 무서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글자 모양이 핸드 라이팅체인것과 그 글자를 수직과 수평으로 섞어 지면에 배열한 편집 방식도 일반 그림책과는 많이 다르다. 처음에는 책을 읽을 때 자꾸 고개를 돌려가며 봐야 해서 왜 이렇게 배열을 했을까 의아했다.


원작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찾아보았더니 원작이 딱 그대로였다. 그 느낌을 한국어 번역 그림책에서도 충실하게 살리느라 나름 고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원작 그림책의 핸드라이팅과 지면 배열 방식

 원작의 느낌을 충실히 살린 한글 번역판                    


그림책의 줄거리는 이렇다.


개 한 마리가 숲에 난 큰 불로 날개를 다친 까치를 자신이 살고 있는 동굴로 물고 와 간호해 주려고 한다.

하지만 까치는 "난 다시는 날지 못할 거야"라고 말하며 개의 도움을 거절하고 바위 그늘 속에 몸을 웅크린다.


그런 까치에게 개는 "난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아. 그래도 산다는 건 멋진 일이야!라며 까치를 위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치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아. 만약 네가 달릴 수 없다면 어떨 것 같아?” 되물으며 자신의 불행이 더 크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까치는 개의 지극 정성에 감동해 동굴에서 나와 함께 강가로 간다. 개는 까치에게 내가 너의 날개가 되어줄게, 넌 나의 눈이 되어줘”.라고 부탁하면서 여기저기 까치를 등에 태우고 달린다. 까치와 개는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친구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불안한 눈빛과 붉은 털을 가진 여우 한 마리가 그들 앞에 나타난다. 다정한 친구 사이인 개와 까치를 질투와 부러움의 눈으로 지켜보는 여우를 까치는 처음부터 못마땅해하고 불편해한다. 하지만 개는 여우에게도 호의를 베푼다. 어서 와. 우리와 함께 지내자.”


그러던 어느 날 밤 여우는 개가 잠든 사이 까치에게 " 나는 개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어. 바람보다도 더 빨리. 나랑 함께 가자."라고 속삭인다. 처음에 까치는 단호히 거절한다. 다음 날 여우는 "하늘을 나는 게 어떤 건지 기억해? 진짜로 나는 것 말이야."라는 말로 다시 까치에게 소곤거리지만. 까치는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 후 까치는 개의 등에 앉아 달리면서 '이건 하늘을 나는 게 아니야. 하늘을 나는 건 절대로 이렇지 않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우가 세 번째로 다시 함께 가자고 속삭이자 까치는 결국 "좋아"라고 말하며 여우를 따라나선다.


여우는 까치를 등에 태우고 먼지 날리는 평야와 소금밭을 질주해 붉은 사막까지 달려간다. 잠깐 동안 까치는 진짜 하늘을 나는 기분을 만끽한다. 하지만 여우는 사막 한가운데서 등에 앉은 까치를 벼룩을 털어내듯이 떨어뜨리고 혼자 떠난다. 여우는 한참 걷다가 뒤돌아보면서 "이제 너와 개는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될 거야"라는 말을 까치에게 한다. 까치는 붉은 사막 한가운데서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얼마 후 혼자 남겨 두고 온 개를 생각해 내고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친구가 있는 곳을 향해 멀고 먼 여행'을 시작한다. 이렇게 그림책은 열린 결말로 끝난다.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그림책


처음 읽었을 때는 과연 이 그림책이 어린이 대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주제가 심각하고 무거워 보였다. 그림책 안에 등장하는 감정이 다양하면서도 복합적이다. 상실, 좌절, 우정, 질투, 외로움, 욕망, 배신 등의 여러 키워드가 떠오른다.


개, 까치, 여우의 캐릭터 또한 생생하다. 사람으로 의인화한다면 우리 주변에 흔히 있을 법한 성격의 인물들이다. 그림책으로 토론할 경우, 논제거리가 풍부하다.


의심 없이 무조건 믿고 환대하는 개의 태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우에 대한 까치의 선입견이나 편견이 결국 여우로 하여금 까치를 해코지 하게 한 것은 아닌지, 개의 친절과 배려를 배신한 까치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개와 까치, 둘 사이를 질투하고 이간질시키고 사막 한가운데 까치를 버려두고 나오면서 '외로움'이 뭔지 알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여우의 행동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날개를 잃어버려 더 이상 날 수 없게 된 까치가 여우의 유혹에 넘어간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등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함께 토론해 볼 만한 지점이 많은 그림책이다. 어린이는 물론 어른을 위한 동화로도 손색이 없는 그림책이다.


미취학 아동과 초등 저학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이 책을 읽어주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까치가 한쪽 날개 없이 불안한 걸음으로 사막을 가로질러 개가 있는 곳을 향해 먼 여행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 뒤에 이어질 뒷이야기를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결코 가볍지 않은 그림책이지만, 두고두고 여운이 남는 그림책이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그림책이어서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 같다. 자녀와 함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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