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현실을 극복하게 하는 '상상의 힘'
2007년에 프랑스와 한국에서 동시에 출간된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검은 새』는 어린이책에 대한 상식과 고정관념을 비트는 작품이다.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이 꼭 읽어야 할 그림책이다.
그림책『검은 새』는 그 제목에 걸맞게 시종일관 흰 바탕에 검은색으로만 그려져있다. 컬러 색채는 단 한 페이지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림책 속 아이의 표정과 검은 새의 모습 역시 귀엽거나 밝지 않다. 아이의 불안과 슬픔이 그림 속에 그대로 묻어난다.
이 그림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무거운 색채와 분위기 탓에 조금 당혹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읽을수록 묵직한 울림이 있고, 깊이가 느껴지는 그림책이다. 생각거리와 토론거리가 풍성하다.
그림책의 첫 장면이다.
한 아이가 반쯤 열린 문틈으로 부모가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입말인지 속말인지 알 수 없는 아이의 한마디!
아무도 부모가 왜 싸우는지 알려주지 않아 아이는 속상하다.
그 아이 앞에 검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는다.
그러자 갑자기 검은 새가 엄청나게 큰 몸집으로 변한다.
그 압도적 크기를 표현하기 위해 이수지 작가가 선택한 그림 구도는 무척 놀랍다.
잠시 후 아이는 새에 이끌려 하늘 높이 올라간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자신의 집이 '점'처럼 작게 보인다고 고백한다. 고민이 하찮아지는 순간이다. 새의 등에 업혀서 하늘을 날고 있던 아이는 마침내 새와 분리되어 혼자 하늘을 날게 된다. 아이와 검은 새는 멀리멀리 바다까지 날아간다.
한바탕 모험을 펼치고 다시 땅으로 내려온 아이는 이제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에게도 비밀이 생겼기 때문이다. 검은 새와 자신만이 아는 비밀이다. 아무에게도 이 비밀을 알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이 앙증맞다.
첫 페이지의 침울했던 아이의 표정이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한결 밝아져있다. 이제 아이는 언제든지 '검은 새'와 함께 하늘을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차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검은 새'가 있었다?!
그림책『검은 새』는 아이들이 간직하고 있는 독특한 '상상의 힘'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공상하는 것,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특기이자 특권이다. '검은 새'는 아이를 '상상의 세계'로 점프하도록 도와주는 마법 같은 존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무수히 많은 이야기 속에서 '검은 새'는 여러 형태로 변주되어 등장한다. 그것은 알라딘의 요술램프 속 '지니'일 수도 있고, 네버랜드로 인도하는 '피터팬'일 수도 있고, 나니아연대기 속 '옷장'일 수도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어린 시절 각자 저마다의 '검은 새'가 있었다.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검은 새』는 잊고 있던 그 존재를 소환해 준다.
부모들이 싸우면 아이는 불안하다.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왜 싸우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싸움에 집중하느라 상처받을 아이의 마음은 안중에 없을 때가 많다. 그림책 속 아이는 이 상황을 혼자 견디고 있다. 그림책을 읽어주다 보면 부모들 역시 자신의 어린 시절 '상처받은 마음'을 떠올리게 되고, 지금 자녀에게 '상처 주는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검은 새』는 작가의 여러 작품들 중 가장 덜 알려져 있지만, 작가가 가장 애정 하는 그림책 중 하나라고 한다.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울고 있는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이들 세계에 대한 경이로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그림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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