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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윈디웬디 May 17. 2024

글쓰기의 초심을 돌아보게 하다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책 읽는 인구는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지만, 책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넘쳐나는 세상이다. 참 많은 사람들이 매일 글을 쓰며 작가가 되기를 소망한다. 글쓰기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이젠 누구나 손쉽게 자신의 글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오늘도 수많은 글이 블로그와 브런치, 인터넷 신문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들은 왜 이토록 열심히 글을 쓰려고 하는 걸까? 그리고 나는 왜 글을 쓰고자 하는가? 글 쓰는 사람들의 내적 동기를 설명한 에세이가 한 편 있다. 바로 우리에게 <동물농장>으로 유명한 영국작가 조지 오웰이 쓴 빼어난 산문 '나는 왜 쓰는가(Why I write)'이다. 


조지 오웰에 따르면, 생업을 위해 글을 쓰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다수 사람들의 글쓰기 동기는 크게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첫째는 순전한 이기심이요. 둘째는 미학적 열정이며, 셋째는 역사적 충동이고, 넷째는 정치적 목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웰은 자신이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나 살았다면 '화려하거나 묘사에 치중하는 책'을 썼을지도 모르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지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독재정치, 식민지 지배 등 결코 녹록지 않았던 시대를 살았었기에 책상머리가 아닌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몸으로 경험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그 노력의 산물이 소설 '동물농장'과 '1984'이었던 셈이다. 전체주의와 독재, 인권탄압, 사회 부조리에 맞서고자 했던 정치적 소신을 예술적 글쓰기를 통해 문학의 경지로 끌어올리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조지 오웰이었다. 


그가 말한 4가지 글쓰기 동기(순전한 이기심/미학적 열정/역사적 충동/정치적 목적)에 비추어 나의 동기를 돌아보았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4가지 동기 중에서 딱 들어맞는 한 가지를 고르기가 쉽지 않다. 굳이 고르자면 아무래도 '순전한 이기심'이 가장 큰 동기인 듯하다. 나의 생각과 나의 느낌을 글로 남김으로써 나라는 존재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클 것이다. 그다음은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처럼 나도 아름다운 문장, 울림이 있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미학적 열정' 역시 가슴속에 품고 있다. 나의 글쓰기 동기가 '역사적 충동'이나 '정치적 목적'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그런 글을 쓰기에는 나의 내공이 한참 부족하다. 다만,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미약하나마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는 바람은 항상 품고 있다.  

    

내가 글쓰기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벌써 오래전 일이 되어 버렸지만, 딸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유치원 때 너무 잘 웃어서 별명이 ‘방실이’였던 딸이 중학생이 되자 서서히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방문을 잠그더니, 말문까지 닫았다. 부모와 딸 사이에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암흑기가 온 것이다. 도대체 저 아이가 무슨 생각으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방금 전에 친구와 전화로 수다 떨며 웃던 아이가 왜 부모에게는 짜증을 폭발시키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일들이 발생했다. 딸은 딸대로 “엄마랑은 도대체가 말이 안 통해. 왜 내 말을 그렇게 못 알아들어?” 짜증을 냈다. 그럴 때마다 나와 남편은 서로의 얼굴을 황당하면서도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보아야 했다. 


그렇게 중1부터 중3 때까지 꼬박 3년간 딸과 나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듯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나는 아이의 불손한 태도와 거친 말에 상처받아 울고, 아이를 야단친 후 속상해서 울고, 자식과 멀어진다는 안타까움에 눈이 붓도록 매일 밤 울었다. 더 엇나가기 전에 잡아야 한다는 엄마와 제발 좀 신경 끄라는 딸과의 팽팽한 감정싸움!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사춘기 전쟁! 날 선 말의 포탄이 날아다니고 마음의 부상병이 속출했다.     


숲에서 길을 잃으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당황하듯이 무방비 상태로 자녀의 사춘기 한복판에 떨어진 나는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삐딱선을 타는 자식 문제를 드러내놓고 물어볼 수도 없어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업무 성과로 존재를 입증하려 했던 일복 많은 팀장의 일상에 제동이 걸렸다. 나는 바닥까지 낮아졌고, 겸손해졌다. 사춘기 딸과 제대로 소통하는 법을 찾느라 고심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아무 글이나 쓰기 시작했던 것이. 일기장을 꺼내 울면서 성토했고, 새벽마다 모닝페이지를 3장씩 채우며 내면의 목소리를 받아 적기 시작했다.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왜 딸을 용납하지 못하는지, 어쩌자고 모범생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하는지,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웅크리고 있는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어떻게 달래주어야 하는지 하나하나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100일간 치유와 성장의 글쓰기를 시작했고, 또 100일간 인문학 공부에 매달렸다. 결국 딸의 사춘기가 엄마를 매일 읽고 쓰게 만들었다. 조지 오웰이 살았던 험한 세월이 그를 정치적 글쓰기 작가로 이끌었듯이 딸의 사춘기는 나를 바닥까지 낮추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글쓰기를 하게 만든 셈이다. 그 시절 열혈 독립투사였던 딸은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사춘기에 부려야 할 지랄을 충분히 부린 덕분인지 제법 자기 삶을 당차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왜 쓰는가?> 예전에도 나를 바로 알기 위해 썼고, 앞으로도 나 자신으로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쓸 것이다. 


      

#조지오웰 #나는왜쓰는가 #나의글쓰기동기 #나를치유해준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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