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읽고 쓰는 윈디웬디 May 15. 2024

내면의 북소리가 들려올 때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너무 늦었다고 포기한 당신의 꿈이 있나요?

도서관에서 웹툰 원작 만화책 <나빌레라>를 읽었다. 동명제목의 드라마도 있다길래 찾아서 다 보았다. 23살 발레리노 이채록과 우편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은퇴한 70살 심덕출이 주인공이다. 발레에 재능 있는 청춘은 자신의 진정한 꿈 앞에서 방황하지만, 70살 할아버지는 40년 지기의 장례식장에 다녀오면서 자신의 어릴 적 꿈이었던 ‘발레’를 배워보겠다고 결심한다. 얼마 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그는 이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음을 생각한다. 가족들에게 '발레' 도전을 선언하자 가족들은 당황한다. 연세가 있는데 무리하게 관절을 쓰다가 건강을 해칠까 염려된다는 이유로 반대하지만, 속내는 나이 든 노인이 민망한 타이즈 입고 '발레' 한다는 것에 대한 창피함과 편견 때문이었다. 은퇴자의 취미활동으로 수영, 등산, 게이트볼, 에어로빅처럼 건전하고 건강에도 도움 되는 것들이 많은데 하필 '발레'냐고 결사반대한다. 시청자인 나로서도 ‘70세에 발레는 무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몇 세 정도에 어떤 도전이면 무탈하고 무방해 보일까?     


서머싯 몸의 고전 소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40세에 안정적인 증권 중개인의 직업을 버리고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가버린다.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지금까지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고 충분히 노력 봉사했으니 이제는 알아서 살아가라고 한다. 남은 생은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그림을 그리면서 살겠다고 선언한다. 만약 내 남편이 그런 통보를 하고 집을 떠나버린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혹은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내가 떠나겠다고 하면 가족들의 반응은 어떨까? 아마도 스트릭랜드의 부인처럼 뒷목 잡았을 것이다. 스트릭랜드는 40대 한창나이의 가장이니 그런 반응이 당연하다고 해도, <나빌레라>의 심덕출 할아버지의 '발레' 도전은 가족을 버리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도 아닌데 모두들 그 도전 자체를 충격으로 받아들인다.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과 통념이 얼마나 무서운지, 남들의 시선 때문에 하고 싶었던 꿈을 얼마나 많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기회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경험은 불확실하며, 판단은 어렵다." 이 말은 그리스 의학자인 히포크라테스가 <아포리즘> 서문에서 밝힌 내용이다. 사실 그가 말한  '예술'은 '의술'을 말하는 것이었고, 배워야 할 '의술'은 끝없이 이어지는데 비해 인생의 시간은 너무 짧다는 한탄에 가까운 표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이 말은 포괄적 의미로 확대 해석되고 있다. '예술'을 의술뿐만 아니라, 모든 기술적 활동으로 확장한다면,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고 떠날 때는 유한한 인생에 대한 절박함이 작용했을 것이다. 심덕출 할아버지 역시 자신의 남은 생이 얼마 없다는 자각이 결심을 부추겼을 것이다.  

 

'삶이 유한하다'라는 사실, 인생의 마감시한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망각한다. 인생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열심히 묻게 된다. 내면의 북소리가 울리는 순간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바쁘게 사느라, 혹은 너무 느슨하게 사느라 자신의 내면을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는 증권 중개소에서 일하는 짬짬이 그림을 배우러 다녔다. 남들이 술 마시고, 유흥을 즐기며 시답지 않은 일로 시간을 보낼 때 그는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무엇을 하며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할지를 찾으려 애썼고, 마침내 찾았다 싶을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가족들에게는 지극히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가장일지언정 한 인간으로서는 치열하게 탐색하고 결정한 셈이기에 마냥 욕할 수만은 없는 인물이다. <달과 6펜스>는 '다르게 살아보기'에 대한 열망을 부추기는 소설이다. 경제적 이유로 꿈을 포기한 채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에게 도발적 질문을 던진다. "계속 그렇게 살다 갈 작정이냐"라고. 스트릭랜드는 '6펜스'를 포기하고 '달'의 세계로 건너간다. 그 대가는 '불안정'과 '궁핍'과 '질병'이었을지언정 그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자유롭게 살다가 갔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고, 어떤 분야에 적성과 재능이 있는지 충분히 탐색할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성인이 된다. 입시라는 거대한 관문 앞에서 모든 고민은 후순위로 밀려난다. 그러다 보니 뒤늦게 고민하느라 방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6펜스'를 기준으로 진로를 정하고 직업을 선택하느라, '달'에 대한 욕망과 동경을 애써 억누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달'이 사정없이 삶을 흔들어대면 그제야 자신의 진짜 꿈을 되돌아보게 된다. 먹고사니즘의 현실을 떠나 예술로 나아가려는 마음은 어쩌면 인간의 보편적 욕망일지도 모른다. 한 번뿐인 인생의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느껴지면 더 두드러지게, 또 간절하게 드러날 뿐이다. 심덕출 할아버지가 발레슈즈를 신고, 스트릭랜드가 파리로 떠나고, 모지스 할머니가 화가의 꿈을 펼치듯, 당신에게도 서랍 속 깊이 감추어둔 꿈이 있는가? 그것을 다시 꺼내 볼 의향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