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로 칼비노 <왜 고전을 읽는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경기도 광주의 시골 마을에서 살았던 나는 우리 집안에서 보기 드문 ‘양갓집 규수’였다. 성적표 대부분의 과목이 '양' 아니면 '가'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가방만 던져 놓고 동네 어귀로 나가 아이들과 해 질 녘까지 놀기 바빴다. 온갖 놀이란 놀이를 섭렵하느라 공부가 무엇인지, 성적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당시의 나는 도무지 ‘감’이라는 게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집을 방문한 외판 사원을 통해 소년 소녀 세계명작 전집 60권 세트를 구입하는 일이 발생했다. 바야흐로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삼 남매 중 유독 내가 그 전집에 꽂혔고, 결국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한 권 두 권 재미 삼아 읽기 시작했는데, 그 전집 속 이야기들은 밥 먹는 것보다, 고무줄 놀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빨간 머리 앤, 작은 아씨들, 키다리 아저씨, 하늘을 나는 교실, 몽테크리스토 백작, 해저 2만 리, 명탐정 홈스, 괴도 루팡,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비밀의 정원,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소공자, 소공녀, 왕자와 거지, 홍당무' 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는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그 속에 무궁무진하게 담겨있었다. 4학년 여름방학부터 불붙기 시작한 나의 독서는 내 성적까지 단숨에 바꿔 버렸다. 5학년 성적표에는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더니 6학년 때는 전 과목 ‘수’에 기말고사 11과목 만점이라는 기염을 토하며 난생처음 전교 1등도 맛보게 했다. 그야말로 양갓집 규수의 인생역전이었다. 갑자기 좋아진 성적으로 나는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관심 밖에 있다가 어느 날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드디어 변방에도 북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 시절 내가 명작동화에 빠졌던 것처럼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이야기를 좋아한다. 특히 재미있는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TV 드라마도, 영화도, 짧은 CF 광고조차도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의 정점이자 꽃이 바로 ‘고전’이다. 오랜 세월 수많은 작가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이야기가 ‘고전’인 셈이다. 시대와 세대를 불문하고 여전히 읽히는 이야기에는 남다른 매력이 있다. 인류의 '집단무의식'이 반영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탈리아 환상 문학의 대가, 이탈로 칼비노는 그의 저서 <왜 고전을 읽는가?>에서 '고전'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렸다.
“고전이란 다시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것처럼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느낌이 들게 해 주는 책이다. 우리가 처음 읽을 때조차 이전에 읽은 것 같아 다시 읽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결국, 고전이란 독자에게 들려줄 것이 무궁무진한 책이다."
그에 따르면 ‘책 좀 읽었다는 사람들’은 “나는 OOO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OOO를 읽고 있어."라고는 이야기하지 않는 책이 바로 ‘고전’이라고 한다. 나 역시 청소년 시절 요약본으로 읽었던 고전을 요즘 완역본으로 하나하나 ‘다시’ 읽고 있다. 요약본으로 읽었을 때는 줄거리를 따라가는 데 급급했다면, 지금은 원작의 섬세한 묘사와 표현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피며 읽는다. 그러다 보니 전혀 다른 작품을 읽는 듯하다. <레 미제라블>이 그렇고 <죄와 벌>이 그렇다. 빅토르 위고와 도스토옙스키가 19세기에 써 내려간 명문장들을 21세기의 내가 읽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한 전율이 느껴진다. 시공간을 초월해 대문호와 직접 교류하는 기분이 든다. 그건 내가 고전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간의 터널을 통과한 이야기만이 줄 수 있는 작가의 내공과 묵직한 메시지가 고전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의성 있는 주제와 소재로 반짝 관심을 끌다가 이내 잊히는 가벼운 작품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고전이 인생을 바꿔줄까요?
세계고전문학을 주로 펴내는 한 출판사에서 북클럽 회원들에게 보낸 특별 판촉 행사 안내문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내 인생을 바꿔줄 고전의 힘,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마세요.” 그 문장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나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정말 ‘고전’이 인생을 바꿔줄 수 있을까? 고전 속에 그런 힘이 과연 있을까? 1년에 가벼운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미디어 우위 시대의 사람들에게 오래되고 두꺼운 ‘고전’이 인생을 바꾸어 줄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그 문구에 한참 동안 눈길이 갔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자기 계발서’가 아닌 ‘문학’ 그것도 '고전문학'의 진가를 알아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 전 친구 두 명을 만나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나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그들에게 요즘 내가 고전문학 읽기에 푹 빠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자 신기하다는 반응이다. 두껍고 어려운 이야기들을 어떻게 읽어내는지 존경스럽다고 한다. 그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따라잡기에도 버거운데, 굳이 오래된 이야기, 그것도 타국의 문화와 역사까지 알아야 하는 '고전문학'은 도무지 읽을 엄두가 나질 않는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나 역시 한동안 그랬다. 처음부터 고전을 손에 잡은 것은 아니었다. 인생의 변환기에 ‘나’를 찾아가는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고전문학'을 다시 읽기 시작했지 그전에는 자기 계발서를 더 좋아했다. 책 모임을 통해 고전문학을 한 권 두 권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100년, 150년 전의 이야기들이 왜 여전히 읽히는지 알 수 있었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긴 고전은 마치 잘 숙성된 와인 같았다. 깊고 그윽한 매력이 있었다. 그 고전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어쩌면 ‘고전’은 그 자체가 감추어진 보배 같아서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에게만 인생을 바꿀 힘이 되어 줄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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