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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윈디웬디 May 29. 2024

불안한 청춘의 슬픈 자화상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고전문학 중에는 방황하는 청춘의 고뇌를 그린 작품들이 제법 많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등이 대표적인 예들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에게는 대부분 청소년기에 지독한 성장통을 겪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성세대의 모순과 허위에 환멸을 느끼면서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심리적 방황을 거듭하는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여준다. 덕분에 이들은 시대를 초월해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던져 주었다.  책을 읽은 독자들은  '나만 이상한 것이 아니었구나. 나만 외로운 것이 아니었어. 나만 죽을 만큼 힘든 것이 아니었다.'라고 느끼면서 안도했다.


앞서 언급한 작품 속 주인공들 중 유난히 더 안쓰럽고 비통한 인물이 있다. 바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이다. 39세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이기에 '요조'는 곧 작가 본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사람의 기질과 성향이 어느 정도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맞는다면,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와 작가 '오사무'는 타고난 민감형인듯하다. 세상의 부조리함을 일찍부터 간파했고,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는 칭찬하지만 뒤에서는 욕하는 기성세대의 이중적 태도와 위선을 일찌감치 알아차렸고, 자신의 기준과 기대치에 어긋하면 결코 상대방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오만과 편견에 주눅 들었다. 남들의 눈밖에 나는 것이 두렵고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어려웠던 요조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편은 자신의 성향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것이었다. 그는 '익살꾼'이 되기로 결심하고,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익살'을 시전하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런 노력 덕분에 항상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들고 인기를 얻고 '장난꾸러기'라는 소리를 듣지만 정작 요조의 마음속은 항상 외롭고 불안하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는 '피에로'의 모습과 흡사하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나’라는 화자가 쓴 서문과 후기, 그리고 그 중간에 삽입된 ‘요조’라는 인물이 쓴 세 편의 수기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 요조가 쓴 첫 번째 수기의 첫 문장은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로 시작된다. 한 사람의 인생 서사를 시작하는 첫 문장은 전체 테마를 암시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부끄럼'은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생애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했다. 그는 평생을 자의식과 수치심, 거절감, 자살 충동에 시달린 끝에  『인간 실격』을 발표한 1948년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무엇이 그를 이처럼 극단적 선택과 파국으로 내몰았을까? 그는 무엇이 그토록 부끄러웠을까?  『인간 실격』 속 요조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의 심경을 짐작할 수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걱정거리라고는 전혀 없을 것만 같은 요조였지만, 그는 "가족이 얼마나 힘들어하고 또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이라는 것 자체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라고 고백한다. 가족 간의 소통의 부재와 공감의 부재가 어린 시절부터 그를 힘들게 한 것으로 보인다. 하녀와 머슴들로부터 심각한 성추행 피해를 입고도 요조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롯 그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었다. 그의 무력감과 슬픔이 느껴진다. 억압적인 가족 분위기도 그의 불행한 인생행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체면을 중요시하는 가족, 일탈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 가부장적 위계질서가 요조를 가족으로부터 소외시켰고, 결국 그를 성적 탐닉과 약물 중독, 알코올중독으로 내몰았던 것 같다. 


세상은 여린 심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항상 불리하다. 약삭빠른 사람들이 언제나 먹잇감을 다 채간다.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말할 수 없게 만드는 분위기는 스스로를 억압하고 감추게 만든다. 『인간 실격』 속 인상적인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도쿄로 가기 전 가족들에게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은지 차례로 묻고 수첩에 적는다. 요조에게도 물으면서 '정월 사자춤 탈'을 갖고 싶지 않은지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들의 의사 따위는 상관없이 이미 답을 정해 놓고 묻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우물쭈물 대답을 못한 요조가 아버지를 실망시켰다는 사실에 밤새 괴로워하다가 손님방에 몰래 가서 아버지 수첩을 꺼내 '사자춤'이라고 적어 놓고 나오며 안도하는 장면은 그래서 참 짜안하면서도 슬프다. 아버지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는 요조의 마음고생이 고스란히 보인다.


『인간 실격』의 마지막 '후기' 부분에서 화자와 마담이 나누는 대화를 읽다 보면, 은연중에 다자이 오사무는 이 모든 파국의 원인을 '나쁜 아버지'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듯하다.


"만일 이것이 전부 사실이라면, 그리고 내가 이 사람의 친구였다면 나 역시 정신 병원에 집어넣고 싶었을지도 모르지." 

“그 사람의 아버지가 나쁜 거예요.” 마담이 무심하게 말했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p.138) 


섬세한 감수성을 타고난 아이였고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던 요조였지만,  아버지 앞에서 속마음을 한 번도 드러내지 못한 채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했던 어린 요조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안쓰럽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씁쓸한 자기변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억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하는 사람은 다 요조처럼 인생을 자포자기해야 하는가? 심리적 상처가 트라우마로 작용할 순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인생을 파국으로 치닫도록 방치할 만큼의 명분이 될 수 있을까?  요조가 자신을 조금 더 보듬었더라면, 조금 더 아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남는다. 이해받지 못하고 공감받지 못하는 고통, 진정한 관계와 소통의 부재로 빚어지는 인간의 존재론적 불안을 <인간 실격>을 통해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결국 인간을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붙들어주는 원동력은 '사랑'임을 또 한 번 생각하게 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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