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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윈디웬디 Jun 05. 2024

문제는 언제나 마음이야, 내 마음

나쓰메 소세키 <마음>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네 마음에서 생명의 샘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성경 잠언 4장 23절에 나오는 구절이다. 세상에 지킬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마음'을 지키라고 한다. 그 '마음'이야말로 생명의 샘이 흘러나오는 근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문제는 언제나 '마음'이다. 마음을 잘 쓰면 행복하고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지만,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그 '마음' 때문에 결국 낭패를 보기도 하고, 삶의 의욕을 상실하기도 한다.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나약하고 깨지기 쉬운지,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고결함을 간절히 사모하는지를 보여주는 고전문학작품이 있다. 바로 일본 근현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이다.


『마음』의 주요 등장인물은 화자인 '나', '선생님' 그리고 'K' 이렇게 세 명이다. '나'는 휴가지에서 우연히 눈길을 뜨는 인물을 만나 친분을 쌓아간다. 화자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그 인물은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부인과 집에서만 지내는 것으로 나온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은둔자적인 삶을 살아가는지 화자는 궁금해한다. 그 사연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선생님이 겪은 과거의 이야기가 나온다. 알고보니 그는 일찍 부모님을 잃었고 믿었던 작은 아버지로 부터 배신을 당한다. 작은 아버지가 부모의 재산을 교묘하게 빼돌리는 바람에 마음의 큰 상처를 입고 다른 사람을 잘 믿지 않는 염세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유일하게 친분있던 고향 친구 K를 자신의 하숙집으로 데려와 함께 지내면서 도움을 주지만, 정작 K가 자신이 마음 속으로 좋아하고 있던 하숙집 따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자신에게 먼저 고백하자 당황한다. 그 고백에 대해 K에게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은 채 오히려 선수를 쳐서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따님과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청한다. 선생님과 따님의 결혼 계획을 아주머니로부터 듣게 된 K는 얼마 후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K는 유서에 그 어떤 원망의 말도 남기지 않고 단지 자신은 "의지가 약하고 결단성이 없어 장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 죽는다"고만 밝힌다. 선생님은 그 후 죄책감에 시달리며 제대로 된 사회생활도 하지 않고 은둔생활만 한다. 친구를 죽게 만든 사연을 부인에게까지 끝까지 숨기다가 끝내 자신도 자살하고 만다.


타국의 고전문학을 읽다보면, 그 작품이 쓰여진 시대의 문화적 특성과 사람들의 정서를 읽을 수 있다. 때로는 그 정서가 보편적이어서 공감이 되기도 하고, 너무 달라서 이질감이나 거부감을 주기도 한다. 1914년에 발표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마음』 메이지 시대가 끝나고 서양문물이 급격히 유입되면서 전통 가치와 새로운 사상이 충돌하던 일본 근현대 격변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근대인이 지닌 자아·이기주의를 예리하게 파헤쳤고, 사람 사이의 관계와 그 안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인간적인 도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음』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과 함께 일본에서 가장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 두 권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확실히 우리 한국인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소설의 제목이 『마음』인 만큼,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내밀한 '마음'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솔직하게 묘사한 점은 좋았지만, '배신' '의절' '질투' 등을 겪은 뒤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삶의 방식'에는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나,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속으로 삭이고, 감추고, 뒤통수 친 다음에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자살해 버리는 자의식 과잉 같은 그런 행동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작품의 배경이 1914년의 일본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본인들의 내면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정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남을 배신하거나 속이거나 상처주지 말아야 한다는 '인간의 도리'를 이야기하는 작품이 한일합방으로 식민지 침탈이 이루어지던 시대에 쓰져졌다는 점에서도 한국인으로서 거부감이 들었다. 확실히 한일간의 아픈 과거사는 문학 작품 독해에서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일본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자살 미화적인 모습과 천황 숭배 역시 불편했다. 투병 중이던 화자의 아버지가 천황의 죽음 이후 급격히 삶의 의욕을 잃어가는 모습과 메이지 천황의 충복이었던 노기 대장과 그의 부인도 '순사'라는 명목으로 따라 죽고, 선생님도 노기 대장이 죽은 이삼일 뒤에 자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인들의 정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했다. 타국의 고전 문학은 그 나라만의 고유한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담고 있기에 그 자체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이해해야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유독 일본의 근현대문학만큼은 그 원칙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음도 사실이다. 두 나라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정서적, 문화적, 역사적 장벽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재확인하게 한 소설이었다.


하지만, 그런 보이지 않는 한일간의 벽에도 불구하고 감탄스러운 측면도 있었다. 인정하기 싫은 인간의 부정적 마음을 해부하듯 솔직하게 써내려간 작품이 1914년도에 발표되었다는 점은 놀라웠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고결함, 그로 인해 좌절하는 개인의 몰락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근현대 일본문학을 통해 일본과 일본인의 근원적 정서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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