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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형사 vs 베테랑 부모

부모라는 본분에 충실하기

영화 '베테랑'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이미 누적관객수 천백만 명을 넘어섰고, 역대 흥행 순위 10위권에도 가볍게 진입했습니다. '안하무인 재벌 3세가 저지른 범죄를 베테랑열혈 형사가 정의의 이름으로 응징한다'는 다분히 권선징악적이고 뻔한 구도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관객들이 꾸준히 상영관을 찾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흥행 돌풍입니다.


무엇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 걸까요? 아마도 실화를 연상시키는 현실성 있는 스토리도 한몫을 한 것 같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에 맞서 멋지게 한방을 먹이는 서도철 형사를 보면서 일종의 대리만족 같은 통쾌함을 느꼈기 때문인 듯합니다. 저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전방위 수사 종결 압박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밀어붙이는 서도철 같은 형사가 현실에서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궁금했으니까요.


'베테랑'이라는 단어는 사실 불어에서 왔습니다. (vétéran [명사]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 숙련가, 전문가, 전문인을 뜻함.)

황정민이 연기한 베테랑 형사 서도철은 강력 범죄를 척결하는 전문가입니다. 진정한 베테랑은 연수만 채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수행하는 직업의'본분'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지속적으로 습득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수 많은 유혹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원칙과 본분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우리는 '베테랑'이라고 부릅니다.


처음엔 모두 정의감으로 출발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변질되는 형사가 있듯이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 중에도 여러 종류의 부모가 있습니다.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처음 품안에 안았을 때의 벅찬 감동과 기쁨은 세월이 지나면점점 잊히고,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좋은 부모'의 모습에서 한참 멀어진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자식농사'라는 말이 있듯이 세월이 가고 연수가 찬다고 저절로 베테랑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부모의 본분이 '자녀를 사랑으로 돌보는 일'임을 우리는 무시로 잊어버립니다.

서도철 형사에게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이유로 온갖 외압이 들어왔던 것처럼 한국의 부모들에게는 '옆집 엄마' '같은 반 엄마' '대치동 교육 전문가'로부터 '자녀의 미래를 위하는 일'이라는 명분으로 온갖 정보가 흘러들어와 경쟁의식을 부추깁니다. 그 대열에 동참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옵니다. OECD 국가 어디에도 없는 '무시무시한 입시경쟁'에 아이들을 내몰아 '청소년 자살률 세계 1위' '청소년 행복지수 세계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를 다그치며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합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입시정보들 속에 부모들은 '소신과 불안' 사이를 오가면서 내가 과연 베테랑 부모인지, 초보 부모인지 종잡을 수 없게 됩니다.


저 역시 제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던 시절,‘초등 4학년 성적이 평생을 좌우한다’ ‘영어 1등은 초등학생 때 만들어진다’ ‘중학교 1학년 공부습관 평생진로 결정한다'같은 책들을 탐독하며 책에서 지목한 시기를 놓칠까 봐 전전긍긍했던 기억이 납니다. 자녀를 민사고 거쳐 하버드 보낸 엄마 이야기, 목동 엄마들의 과학고 보낸 이야기, 대치동 엄마들의 입시전략 ,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하는 영어영재 이야기들을 읽으며 내 아이를 그들처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노심초사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자녀교육 정보를 수집하기에 앞서 베테랑 부모가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내 아이를 잘 관찰하는 일'입니다. 아이의 장점과 단점, 성향과 기질을 면밀히 파악하여 아이를 위한 맞춤 조력자가 되어 주는 일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공부의 즐거움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책임감 있게 한 가지씩 성취해 나가는 경험을 쌓도록 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야 오래도록 진득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베테랑 부모가 되는 일은 서도철이 뚝심 있게 밀어붙여 조태오에게 수갑을 채우는 일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주위에서 아무리 경쟁을 부추기고 불안감을 조성해도 흔들리지 않아야 베테랑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천만 관객이 열광하듯 내 자녀에게 존경받는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자녀 인생의 잔소리꾼이 아닌 멘토가 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소신 있는 부모로 산다는 것,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베테랑 부모가 되기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파이팅을 보냅니다.


이상 신은하의 일요편지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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