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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만송이 Jun 23. 2023

적당한 술은 언제나 옳다.

[책리뷰] 아무튼, 술 - 김혼비 





좋아서 한 잔.

슬퍼서 한 잔.

그냥 마시고 싶어서 한 잔.

술을 마시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확실한 건 술은 항상 옳다.




요즘 꽤나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조금 가볍고 싶어서 읽은 책. 나는 애주가니까. 훗.


저자는 꽤나 술에 진심인 사람이다. 함께 마시는 술도 좋고, 혼자 마시는 술도 좋고, 새로운 술을 마시는 것도 좋아하고, 항상 마시던 술도 좋으며, 술에 진심인 사람을 만나면 더 좋아지는 그런 사람. 그래도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며 술과 지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사람인 거 같았다. 우여곡절 많은 인생이었던 것 같은데 힘듬이 적혀있진 않다. 그저  간간히 흘러나오는 단어들에서 꽤나 다채로운 시간을 보냈을 것 같고 유쾌하지만 씁쓸한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처음 만난 그때부터 세상이 나를 등 돌린 날도 세상에 가장 즐거운 순간에도 함께한 술. 그리고 그 술을 함께해 준 지인들. 술 때문에 즐거웠던 일. 술 때문에 위로받은 일 등을 이야기하는데 생각해 보면 술이 좋다기 보다 술을 함께해 준 지인들이 좋아서였던 것이 아닐까 싶다. 술은 함께 마시면 더 즐거운 법이니까 말이다.


거기다 위트까지 섞이니 애주가들에게는 참 괜찮은 책인 것 같다. 


나의 한라산 사랑


나의 가장 큰 술 메이트는 나의 짝꿍이다. 밖에서 마시는 술은 모두 일이니 너랑 마시는 술이 제일 맛있다는 우리 짝꿍은 연애와 결혼까지 해서 18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나와 함께 마시는 걸 좋아한다. 집에서 마셔도 좋고 할머니 찬스로 밖에 나가서 마시는 술도 좋고 술을 마시며 아이들 이야기 연애 때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은 나의 술 짝꿍.


나의 첫 술은 16살쯤이었던 거 같은데 그때 울산은 고입고사가 있어서 수능처럼 공부를 했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100일 주가 있었고 그때는 딱히 19세 미만 판매금지 이런 것도 없어서 그때 처음으로 소주라는 걸 마셔봤는데 무척 썼었다.. 그 뒤로 잊을만하면 한 번씩 마셨던 것 같다. 어디까지나 그 시절이나 가능한 이야기. 


그래도 학창 시절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고3 수시모집에서 친구 한 명이 떨어졌는데 본인 생각에 타격이 좀 컸었던 것 같다. 그러더니 석식 시간에 학교 등나무 밑에서 술을 마신 것. 그때 만취한 친구를 데려다준 것은 담임 선생님이었다. 다른 선생님에게는 일절 이야기하지 않고 술 취한 친구를 한번 우리들들을 한번 보더니 한숨 한번 크게 쉬시고는 곱게 차에 태워서 집까지 데려다준 선생님은 내가 지금껏 봐왔던 어른들 중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었다.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대학교 1학년 3월은 아빠가 나의 등도 많이 두들겨 줬었다. 아빠 미안해.


여러 우여곡절 끝에 나의 적정 주량을 알게 되고 그 뒤로는 많이 조심하면서 마시는 편이다. 그리고 밖에서 멀쩡히 마시다가 나를 데리러 오는 사람을 만나면 취기가 왜 그렇게 급격히 올라오는지. 짝꿍이 참 많이 고생했더라 지. 그렇게 술은 나의 생활에 스며들었고 이제는 반주도 즐기고  신랑의 취향에 따라 칵테일도 마시고 다양한 주종을 접하며 즐거운 음주 생활을 즐기고 있다.




장르 불문 술 사랑


몇 가지 우여곡절


수학여행 때 누구나 그러하듯 술을 잔뜩 챙겨가지만 선생님들의 검사에 모두 몰수 당하는 그 시절. 우리 담임선생님은 소주는 다 가져가고 맥주는 남겨주셨다. 뭐 너무 많으면 챙겨 가셨지만. 아이고 못 찾겠네..라며 그때 그 선생님의 찡긋 한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첫사랑이랑 헤어졌을 때 (성인 되고 나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한동안 주사가 우는 거였다. 그걸 자각하는 순간 몇 달 동안 술을 안 마셨다. 적어도 남에게 피해 가는 주사는 부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어서. 지금은 술 마시면 지금보다 말이 10배는 많아진다.          


20대에 술을 마시고 집에 가는데 열쇠구멍에 열쇠를 못 꽂아서 문 앞에 계속 서 있었다. 아이큐가 80이 안되면 열쇠 꽂는 걸 못하는데 술 마시면 원숭이 아이큐가 된다고  한동안 별명이 원숭이였다.          


걷술을 좋아했는데 그래도 아이들 있는 공원에서 차마 그러지 못하겠기에 물병에 넣어서 친구랑 동네 돌며 열심히 마셨던 때가 있었다.           


대학원 때 학부 생물 실험으로 발효 실험하겠다고 흑미를 섞어 30리터짜리 통에 막걸리를 만들었는데 연보라색 아주 멋진 술이 나왔다. 대학원생 모두 나눠 마시고 술 약한 선배 한 명은 연구실 구석에서 하루 종일 잠만 자다 집에 갔다.           


대학원 때 학교 축제에서 실험실 모두가 학과 주촌에 가서 팔아준다고 술을 마셨는데(교수님 포함) 소주에 복분자 액기스를 타 먹었다. 과실주가 위험한 게 갑자기 취한다는 거였는데 그날의 나의 마지막 기억은 담당 교수님의 '허허 학생. 여기서 이러면 안 돼요.'였다.. 내가 뭘 했는지는 다른 사람에게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참고로 나는 아직도 복분자를 마시지 못한다.          


짝꿍의 한동안 취미가 맥주 만들기였는데 어떻게 만들었는지 16도짜리 맥주를 만들었다. 문제는 모두 1리터 페트병에 포장이 되어 있었다. 뜯어서 마시면 정말 만취하게 되는 괴물 같은 맥주였다.          


그 외 다수지만 여기까지. 훗.




모든 고기와 어울리는 소주


어떤 음식이라도 어울리는 술은 존재하고 어떤 장소에서도 딱 맞는 술이 있다. 신기하게도 그걸 또 기똥차게 찾아서 먹는 우리가 있고. 앞으로도 이렇게 마실 거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마시는 게 목표인지라 저자처럼 운동도 열심히 하고 안주도 잘 챙겨 먹고 위 관리도 열심히 하는 우리.


감정이 들어가지 않은 술잔은 없고 위로받지 못하는 술잔도 없는. 그래서 가장 좋은 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시는 술이었다. 불현듯 나와 하얗게 불태웠던 술친구들이 생각나나는. 다들 잘 지내고 있으려나. 대부분 엄마가 되었고 그중에 멀리 이민 간 친구도 있고 다들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친구들도 술잔을 보면 내 생각이 가끔 나겠지?? 


그때는 세상이 그게 다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던 그 시절. 그래도 언제나 함께 해서 고마웠던 친구들. 연락 한번 해봐야겠네. 




기억하고 싶은


나도 기억 못하고 옆에서 본 사람도 기억 못 하는 주사가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끝까지 배제할 수 없다         

사실 웃을 수 있는 포인트가 비슷하다는 건, 이미 정치적 성향과 세계관이 비슷하다는 말을 포함하고 있다.         

그 집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집이었다          

나는 내 집에서조차 수저가 몇 벌 있는지 모르는데, 그래서 나는 나 자신과 친하지 않은 걸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삶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지만 하지 않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니까, 가지 않은 미래가 모두 모여 만들어진 현재가 나는 마음에 드니까          

살다 보면 가끔 욕이 아닌 다른 언어로는 설명할 수도, 그 느낌을 살릴 수도 없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그럴 때 누군가 던지는 찰기 도는 다부진 욕 한 방이 가져오는 카타르시스는 화려하고 청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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