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생존커피- 최하나
세상의 쓴맛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던 쓴 커피는
어느샌가 세상에 없으면 안 되는 나의 친구가 되었고
쓰디쓴 세상의 안식처가 되었으며
나의 인생에 가장 큰 기준이 되어버렸다.
번뇌 가득한 밤.
잠은 오지 않고 당장 내일부터는 바리스타학원을 가야 해서 읽어본 책이다. 커피 덕질 이야기라 생각하면 쉬울 듯. 다사다난한 인생을 커피를 벗 삼아 버텨 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험난한 사회라는 정글을 커피로 수혈하며 살아내고 나의 터전을 지켜낸 이야기. 카페를 직접 하는 것보다는 커피를 마시는 게 더 좋은 커피덕후의 이야기이다. 어떤 커피를 마셔도 좋다는 그녀는 어쩌면 커피가 주제이며 덕질이라는 부제목을 단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이돌을 따라다닌다고 하여 빠순이라는 명칭이 붙었던 시절이 있다. 빠순이 뒤에는 항상 부정적인 단어들이 따라다녔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따라다니며 그 오빠들을 위해 용돈을 갖다 바치는 아이들이었으니 말이다. 어느 순간 덕질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처음엔 안 좋은 의미로 시작했지만 요즘은 꽤나 긍정적인 단어에 속한다. 덕질이라 하면 아마추어와 프로의 사이쯤 되는 듯한 이미지가 생겨서 일지도. 일명 예쁜 쓰레기라고 불리는 소품들을 모으기도 하고 어느 한 뮤지컬을 끊임없이 보는 사람도 있다. 덕업일치라고 하여 덕질하다가 일을 하게 된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나는 덕질이라는 단어를 너무 좋아한다. 삶의 활력소가 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뭐랄까 삶에 찌들어 죽어가고 있을 때 내리는 단비라고나 할까. 이건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모른다. 그래서 취미를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많은 거다. 취미를 좀 더 열심히 하면 덕질이 되는 거니까. 나의 학창 시절 첫 덕질은 아이돌이었으며 험난했던 대학원을 버티게 해 준 것도 역시 아이돌이었다. 그리고 몸이 엄청 망가져 정말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운동에 대하여 덕질을 했다. 워라밸이 깨지고 워킹맘으로 시들어가고 있을 때는 연필덕후고 문구덕후였다. 지금이야 잠깐 쉬고 있지만 정말 열심히 빈티지 연필을 사 모았었다. 지금 가격이 못해도 2~3배 이상 뛰었다고 하니 되팔면 못해도 몇 달 생활비가 나올 정도.
저자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일을 하고 몸 관리를 한다는데 나는 정말 그 말에 공감한다. 어지간한 연필은 이베이에서 다 휩쓸었기도 하지만 연필 한 다스를 사는데 못해도 몇만 원이 깨지니 돈을 벌어야 덕질이 가능하다. 하.. 역시 돈을 벌어야겠어.
나 역시도 그저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었다면 아마 금방 지쳐 나가떨어졌을 거다. 워라밸이 갖춰지지 않은 회사는 정말 몸과 마음을 망친다. 주 5일을 하고 외국에서는 주 4일까지 하는 이유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워라밸이 깨져 마음이 병들기 전에 덕질 거리를 찾는다면 마음의 병을 막을 수 있다. 물론 몸은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몸은 마음이 튼튼하면 잘 버틴다. 회사일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사람보다 사람 때문에 그만두는 일이 훨씬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된다.
요즘 내가 그렇게 방황하고 활력이 없었던 것은 덕질을 하지 않아서 일까를 잠깐 생각해 본다. 시간 날 때마다 후다닥 펼쳐보고 적어보고 흐뭇해하고 기뻐하던 그런 시간이 나에게 요즘 없다. 책을 읽지만 이건 덕질이 아니다. 덕질은 근본적으로 즐거워야 한다. 책을 읽는 것이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엔도르핀이 마구 솟아나는 정도는 아니니까 말이다. 다시 필사를 시작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지금 하고 있는 운동을 좀 더 열심히 해봐야 하나 싶기도 하고. 혹시 모르지. 곧 있으면 가게 될 바리스타 학원에서 나의 덕질을 찾을지도.
책 리뷰를 쓴다고 앉아서 나에 대한 이야기만 주절주절 이야기한 것 같긴 하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나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다 다르지만 통하는 것들은 비슷하니 말이다. 커피도 좋고 덕질도 좋은 이 책. 커피 한 잔과 함께 나의 덕질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꽤나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