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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만송이 Jul 06. 2023

2. 20년만에 자유를 얻다

현실자각타임

일을 그만두고 칩거에 들어갔다. 아이들 등하원과 동네 마트를 제외하고는 정말 아무곳에도 가지 않았다. 365일중 300일을 넘게 출근을 한다고 매일 나갔더니 그냥 집이 좋더라.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한번도 뒤집지 못했던 서랍을 몽땅 뒤졌다. 초등학교 1학년이 끝나가는 첫째의 학습상태도 체크하고 아직 기저귀를 떼지 못한 4살 올라가지 직전의 둘째의 상태도 체크했다. 알고보니 우리집은 굉장한 구멍투성이었다. 


집청소는 정말 한달이 걸렸다. 그리고 지금도 진행중이긴 하다. 100리터 쓰레기 봉투를 5개를 버렸고 기부할 것은 기부하고 팔 것은 팔았다. 실은 더 버리고 싶지만 같이 사는 동거인들의 반대로 버리지 못한 것들도 있다. 뭐 그래도 집은 충분히 깨끗해졌다. 나는 미니멀라이프는 못되고 심플라이프쯤 되는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항상 정리 못하고 물건들 찾아다니는 것이 일인 사람이었는데 각 잡고 정리해 놓고 나니 뭐든 잘 찾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첫째의 학습상태는 엉망이었다. 가나다라마를 가다마로 읽고 있는 첫째를 보았을 때 일명 현타가 제대로 왔다. 학습지를 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읽지 않고 대충 푸는 학습지는 돈을 길바닥에 버리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다 그만두고 내가 앉아서 가르치기로 했다. 연구원하기 전까지 애들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놓지 않고 했던 터라 저학년쯤은 괜찮은 거라 생각했지만 역시 내새끼는 내가 가르치는 게 아니다.

정말 토하게 싸우고 반년에 거쳐 첫째의 공부습관을 잡았다. 우쭈주 잘한다 하고 칭찬만 하면 되는 시기는 이미 지난터라 반은 혼내고 반은 회유하고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섞어 가며 공부습관을 잡았다. 나는 그래도 나의 딸이 머리가 좋을 것이라 생각을 했었다. 엄마 아빠가 모두 석사 출신이다 보니 공부머리는 있다고 생각해서 초등2학년 수학 문제집을 수준별로 샀었는데 한 장 풀어보고 알았다. 아 이건 아니구나… 제일 기본책과 연산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공부 잘하는 이웃에게 줬다. 3학년이 된 지금도 우리 딸은 기본책만 푼다. 책보는 습관도 늦어 버린 우리 첫째에게 나는 항상 말한다. 너는 책을 안읽어서 문제집이라도 읽어야 한다고. 그래서 국어 독해문제집도 꼬박 풀리고 있다. 역시 꾸준한게 답이다. 지금은 그래도 곧잘 푸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도 싸운다. 뭐 조금 있으면 사춘기고 올 테니 그 전까지는 정말 꾸준히 싸우겠지. 다시 말하지만 혼내는 거 아니고 싸우는 거다. 엄마의 권위 따위 이미 없어진지 오래다. 뭐 이렇게 친구 같은 엄마도 괜찮은 것 같아 만족중이다. 


우리 둘째는 기질이 예민하다. 촉감이 특히나 예민하고 관찰력이 좋아서 낯선 곳은 잘 가지 않는다. 가더라도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아이인데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기저귀를 떌려고 하다보니 사단이 났다. 쉬를 참는 거다. 1박 2일을 참아내는 아이를 보니 이건 아니다 싶어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어린이집에서 자꾸 종용을 했는지 아이는 기저귀에 더 집착을 했다. 그래서 좀 더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4살 여름방학에 작정하고 온 집안이 하루 종일 응가송을 틀어놓고 아이는 기저귀와 작별인사를 했다. 






그렇게 1년을 넘게 아이들에게 집중을 했다. 이 것 말고도 참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일을 그만두지 않았으면 못 알았을 이야기들이 태반이었다. 나는 일이 생각보다 많이 중요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일단 우선순위가 달랐으니 말이다. 분명 일하면서도 아이를 잘 돌보는 엄마들이 많다. 자신을 갈아넣어서 아이를 돌보고 있겠지만 역시 시간의 한계는 있다. 정말 필요한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을 잡아내는 것이 정말 힘들다. 그 시간에 나는 일을 해야 했고 아이는 곪아 가고 있으니 말이다. 적절한 순간에 나는 일을 잘 그만뒀다. 내 몸이 아프기 전, 아이들의 마음이 아프기 전, 우리집이 쓰레기장이 되기 직전에 나는 일을 그만 뒀고 아직도 가끔씩 발견되는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이 놀라울 뿐이다. 


이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나갔고 나의 통장의 잔고도 그 시간만큼 비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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