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읽고 싶었던 날이었다. 아이 둘은 아팠고 그러다 보니 내 몸도 마음도 지친 날. 그래서 따뜻한 책이 읽고 싶어서 선택한 책이었다. 그리고 나의 선택을 틀리지 않았다.
스타트업을 창업해 몇 년간 앞만 보고 달려왔던 주인공 유진은 소양리에 북카페를 열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것도 거의 우발적으로 발생된 일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북카페는 펜션이자 작업실로도 신청이 가능했고 아름다운 유리 정원과 오래된 매화나무 그리고 정겨운 밥상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근처에는 메타스퀘어 길이 있고 늪지가 있으며 누군가 어렵게 공수해 온 반딧불이가 날아다닌다. 조금 더 가면 아주 큰 호수가 있고 그 근처 어딘가에는 작지만 멋진 미술관도 있다. 그렇게 멋진 소양리에 터를 내린 유진은 사촌인 시우와 소양리 토박이인 형준과 함께 북스 키친을 꾸려나간다.
따뜻함이 가득 묻어나는 이곳은 음식을 추천해 주듯 책을 추천해 주고 그 책을 읽으며 마음의 여유를 찾길 바라며 유진이 만든 곳이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다양한 손님들이 찾아온다.
가수이며 국민 여동생인 다인, 시우와 4 총사로 대학 생활을 즐겁게 지냈던 세린과 나윤, 그리고 세린의 고종사촌인 지훈, 그 지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던 마리. 최연소 판사를 노리던 소희, 꿈꾸던 일을 포기고 결국 아버지 회사에서 쫓기듯 생활하던 수혁 등, 어쩌면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 등장한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유진이 책을 추천해 주는데 그게 그렇게 찰떡이다. 저자가 책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정말 어딘가에 저런 책방이 있다면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양리 북스 키친의 아침은 할머니의 손길이 닿은 시간처럼 평화롭고 여유로웠다.
누구나 힘들게 사는 세상이다. 공황장애도 많고 우울증에 불면증을 가진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아마 한 모퉁이에 좋은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 살 것이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따스함을 느끼고 싶어 다시 찾은 소향리에서 다인은 할머니의 흔적을 찾고 우울감을 털어버린다. 물론 앞으로도 힘든 일이 많겠지만 사람은 좋은 추억으로 오래 견뎌낼 수 있으니 말이다.
나에게 좋았던 기억은 고등학교 때였다. 내 평생 가장 신나게 놀았던 3년이었다. 여고생 10명이서 계곡에 놀러를 갔는데 수박이 너무 무거웠던 친구 2명이 계곡으로 수박을 던졌다. 그때 알았다. 물의 표면장력은 어마 무시하다는 것을. 수박의 겉은 멀쩡했는데 안은 다 쪼개져서 뭉개져있었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즐겁게 웃고 자르지 못해 손으로 주워 먹었던 기억들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있다. 장난으로 시작된 생일파티가 나중에는 학교 잔치가 되었던 순간에도,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겠다고 담을 넘던 그 순간에도 나는 언제나 행복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고등학교 친구들이 가장 좋다. 여기에 나오는 4 총사처럼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소중하다.
정상적으로 산다는 기준이 꼭 하나는 아닐지도 모르는 거라고요.
어릴 때 책을 많이 보던 소희는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해서 결국 최연소 판사 자리를 넘보는 순간이 왔다. 그녀는 정말 앞만 보고 달렸지만 결국 그녀에게 온 것은 갑상선암이었다. 그러고 생각이 많아진 그녀가 찾은 곳은 북스키친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결국 최적의 경로를 찾기로 마음을 먹는다. 다른 사람처럼 최대한 빨리 무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나에게 맞는 곳에 조금 돌아가더라도 최적의 경로를 찾아 꿈을 실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녀는 글을 쓰고 싶었고 그걸 위해 조금 더 노력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완벽하지 않는 순간을 즐겼다. 그렇게 그녀는 나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명성을 가지고 싶어 하고 돈을 벌고 싶어 한다. 최단기간에 이룬 사람들을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마치 신봉자가 된 것처럼 여기저기에서 떠든다. 하지만 그게 단 하나의 정상적인 기준은 아닐 것이다. 누구는 최단기간에 이뤄내겠지만 또 누군가는 천천히 모난 곳을 둥글게 만들며 다른 기준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뤄낸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나의 기준을 잘 만들어 햘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도 잘 생각하고 말이다. 여전히 이런 문제는 나에게 어렵다.
인생이 쓴 물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겠지만, 쓰디쓴 순간에도 깊은 맛이 있다는 걸 기억해
뮤지컬 연출가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친구에게 사기까지 당했던 수혁은 결국 아버지의 바람대로 회사에 들어간다. 단단한 아버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수혁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다. 의미 없고 정글과 같은 회사 생활을 그나마 버티게 해 준 것은 어머니였는데 어머니마저 암으로 돌아가시자 수혁은 죽음에 대해 한걸음 더 가까워진다. 하지만 결국 버텨낸 수혁이다. 실패와 좌절을 인정하고 결국 자기가 기억하던 반쪽 자리 추억에서 완벽한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낸다.
누구나 있는 실패와 좌절은 항상 어렵고 아프다. 그게 무서워 시작도 하지 않는 사람도 많고, 하더라도 이상해질 것 같으면 금세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이고 말이다. 실패와 좌절을 처음부터 강단 있게 잘 버티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다 그렇게 아프게 크는 거다. 나 역시도 크고 있는 중이라 생각하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렇게 실패해 봤으니 다르게 도전해 보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냥 주절주절 쓰고 싶은 밤이었다. 남들에게 읽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을 무수히 봤지만 오늘 같이 운 날은 그냥 나 이렇게 느꼈어요.라고 적고 싶었다. 그래도 일단 이곳은 나의 영역이니 말이다. 그래도 좋은 책과 좋은 글과 그리고 이렇게 내가 쓸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꽤나 행복한 일이다.
오늘은 아이들이 조금 더 나아지고 맛있는 밥까지는 무리더라도 맛있는 커피 정도는 마실 수 있길 바란다. 조금은 여유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