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술한 공작새 Apr 25. 2019

다시 찾은 노상 낭만

까미노 10일 차-옳은 길에 대하여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일어났다. 꿈에서 깨보면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여기나 군대나 다를 바가 없었다. 오늘은 30km를 걸어야 한다. 사촌끼리 걷는다는 멕시칸 남녀 한 쌍은 이미 출발하고 없다. 오늘따라 갈 길은 멀지만 꿈의 여운을 좀 더 즐기고 싶어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한번 놓친 꿈을 다시 찾기란 어렵다. 꿈 없는 잠을 40분가량 푹 잤다. 리오하 주의 주도인 로그로뇨는 큰 도시다. 팜플로나에서도 느꼈지만 큰 도시에서는 길을 찾기 어렵다. 길을 찾는다 해도 이리저리 몇 번씩 꺾어야하기 때문에 항시 폰을 손에 들고 있어야 한다. 카페에 들러 아침으로 카페 꼬르다도와 하몽 샌드위치를 먹으며 지도를 한참 보다 짜증이 확 나서 폰을 닫았다. 도시를 떠나려면 어차피 해 지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무작정 걸었다.     

 머지않아 지도를 볼 때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공원이 나왔다. 공원의 끝에 도시의 끝이 있다. 무조건 서쪽을 향해 공원을 빠져나오자 드디어 이정표가 보였다. 공원은 또 다른 공원으로 이어졌다. 호수까지 있는 꽤 큰 공원이었다. 청둥오리들이 여유롭게 노닐고 있었다. 이들은 서양의 오리들이 무조건 흰색 혹은 갈색일 것이라는 편견을 여지없이 깨준다. 비둘기도 마찬가지다. 디즈니 만화에서 주인공이 아침에 창문을 열면 푸드덕 거리며 날아오를 만한 흰 비둘기는 이곳에도 없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굳이 고증을 해가며 만들었을 리 없긴 하지만 편견에 가득 찬 관광객 입장에서는 꽤나 아쉽다. 청둥오리들과 회색 비둘기 떼, 청설모에게 먹이를 주던 한 할아버지와 애완견을 데리고 조깅하던 한 쌍의 커플을 지나쳐 다시 길 위에 올랐다.     


 어느 길이 옳은 길인가를 지도에서는 가르쳐주지만, 사실 그것이 진실로 옳은 길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금은 유명해져서 레저용으로 걷는 사람이 많지만 까미노는 원래 순례자들의 길이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되듯 어떻게 해서든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만 가면 되는 것이다. 현재 이용되는 루트가 고정된 것은 21세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 후의 일이다. 아마 그 이전 초기 순례자들은 무작정 서쪽으로 걷지 않았을까. 산이 있으면 산을 넘고 강이 있으면 강을 건너고. 가야만 하는 길, 정해져 있는 길이란 없었을 것이다. 다만 더 좋은 길, 쉽고 빠른 길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까미노는 언제나 더 좋고 쉽고 빠른 길로 순례객들을 인도하지 않는다. 평평한 콘크리트를 놔두고 굳이 진흙길로 걷게 만든다. 이정표를 따라 힘들게 높은 곳에 있는 마을로 올라갔더니 마을 최정상을 찍고 다시 내려와 원래 걷던 평평한 도로와 조우하는 일도 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고생 좀 해보라는 심산인지 높은 곳에 올라가서 경치 구경이나 하라는 뜻인지는 알 방도가 없지만 그럴 땐 괜히 속은 기분이 든다. 공원을 나서며 이정표를 따라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식 루트가 아닌 공원을 한 바퀴 돌아오는 루트를 걸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번에도 또 제대로 속은 기분이 들었다. 문득 더 빠르고 쉬운 길이 아니면 어떠냐는 생각을 했다. 아침부터 몇십분 더 고생하긴 했지만 그래도 호수에 노니는 청둥오리들과 함께 아름답게 하루를 시작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공원을 지나니 이윽고 포도밭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어떤 나무들은 이미 가지치기된 상태였고 어떤 나무들은 아직 수확 후 남겨진 포도가 곳곳에 달려 말라가고 있었다. 한국에서 까치밥 주는 개념과 비슷할까 하고 생각해본다. 이 곳 리오하 지방은 보르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와인 산지 중 하나다. 스페인에서는 10유로도 안 되는 돈에 질 좋은 리오하 와인을 병째 마시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엊그제는 한국 한 레스토랑에서 즐겨 마셨던 와인을 발견했다. 동일 빈티지가 한국에서는 3만원, 스페인에서는 세일가 3.75유로. 여기서 와인을 좀 더 열심히 즐기다 가야겠다.     


 끝없는 포도밭을 걷다보면 미국에서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미국 중부에서는 어디를 가든 끝없는 옥수수밭의 향연이 펼쳐진다. 지평선에서 반대쪽 지평선까지 빈틈없이 들어선 옥수수들은 처음에는 충격적인 장면이었지만 이내 눈을 감고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그저 그런 풍경 중 하나가 되었다. 팜플로나에서 푸엔테 라 레이나로 갈 때의 밀밭, 오늘의 포도밭 모두 그러하다. 눈으로 볼 만큼 보았으니 미국의 옥수수밭처럼 이제는 내 마음 속 풍경 중 하나로 확실히 자리 잡을 것이다.     

 소설을 쓰느라 이번 여행 내내 겨울 산티아고 순례길의 냄새를 찾고 있었다. 향에 민감한 여자 주인공을 여행으로 이끌 장치 중 하나이다. 다녀온 친구 하나는 소똥과 양똥 냄새라 했다. 첫날과 둘째 날의 경험으로 그럴듯하다 느꼈지만 적어도 여자 주인공이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아닌 이상에야 쓰기 힘들 일이다. 오늘 처음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의 냄새를 맡았다. 겨울 산티아고의 냄새는 멀리서 태우는 포도나무 가지의 매캐함, 걷는 내내 맡은 흙내, 아직 잘라내지 않은 가지에 매달려 말라가는 포도의 달콤한 냄새, 그리고 아직 마르지 않은 싱그러운 풀냄새가 어우러진 향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고, 맡을 냄새도 많을 테니 소설을 이어 쓰는 것은 잠깐 미뤄두기로 한다.     


 첫 마을인 나바레테에서 성당 앞 벤치에 앉아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나보다 늦게 출발한 순례자들이 앞서 지나간다. 그럼에도 조바심이 안 나는 걸 보니 점점 스스로 순례 자체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첫날에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경주하듯 걸었나.     


 점심. 마음에 점을 찍듯 먹는 식사다. 한국에서는 무조건 맛있는 음식을 찾았다. 점심에 고기를 폭식하기도 했다. 몸이 고생하니 밥이라도 잘 먹자는 주의였다. 까미노를 걸으며 분명 몸은 일생 중 제일 고생하고 있을 터인데 흔히 먹는 점심은 바게뜨 4분의 1쪽에 버터 조금과 1유로에 너덧 장 들어있는 하몽 슬라이스이다. 아니면 맥주 한 잔에 또띠야 한 조각이거나. 점점 본질에 맞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점심을 마치고 나바레테를 나오면 곧게 뻗은 고속도로와 그 옆으로 또한 곧게 뻗은 까미노를 마주한다. 언뜻 봐도 30분은 걸어야 도달할 곳에 차들은 내 옆을 스쳐간 지 1분이면 도달해있다. 그러고 보니 그간 문명 속에서 참 편하게 살았구나. 이 스마트폰마저 없었다면 나는 여러 축척의 지도와 매일 밤마다 글을 쓸 양피지 두루마리나 석판을 수레에 가득 가지고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곧게 뻗어 하늘과 닿은 길을 걸음은 생각보다 경외로운 일이다. 무한히 뻗어있을 것만 같은 이 길을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다보면 어느새 하늘과 맞닿았던 그 곳에 내가 서있다. 그리고 하늘은 저 멀리 도망가 새로운 길의 끝에 선다.     

 하늘과 술래잡기를 하다 보니 옆길로 빠져 다시 나오는 포도밭, 포도밭, 포도밭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세계 최대라는 말은 괜히 붙는 것이 아니다. 매캐한 매연 대신 다시 포도가 말라가는 냄새와 포도나무 가지 태우는 냄새가 났다. 포도밭을 걷다보니 길을 헤메는, 점심 때 내 앞을 지나간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로호라고 했다. 포도밭에서 일한다는 이 남자는 고향인 프랑스 버건디 지방에서부터 야영을 하며 걸어오던 참이었다. 까미노에는 올 계획이 없었는데 마치 포레스트 검프처럼 집을 떠나 걷고 걷고 걷다보니 어느 새 까미노에 서있었다고 한다. 투르 지방에서 똑같이 텐트를 매고 걸어오던 바쏘가 생각났다. 스페인에서는 야영이 불법이 아니냐고 물으니 스페인은 물론 프랑스에서도 불법이란다. 바쏘나 로호나 둘 다 참 멋있는 친구다.     


 과묵한 바쏘와 달리 말하길 좋아하는 로호와 길을 가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로호는 현재에 집중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며 스스로 배낭 안에 챙긴 것들에 대해 반성한다고 했다. 왜 옷을 두 벌씩이나 챙겼는가, 왜 텐트 방수커버를 챙겼는가, 왜 비옷을 챙겼는가. 이 모든 것들이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오는 것이었고 우리가 그토록 걱정하는 미래는 현재가 되지 않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다소 극단적이긴 했지만 10kg도 무겁다 하는 이 까미노 위에서 17kg짜리 배낭을 짊어진 나는 적어도 어느 정도 그에게서 배울 것이 있었다.     


 포도밭에서 말라가는 포도 한 송이를 따먹으며 로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금세 나헤라에 도착했다. 도시로 들어서자마자 바가 보여 나는 맥주 한 잔을 하러 잠시 멈추고, 로호는 제 갈 길을 갔다. 오늘도 나헤라나 그 이후 어딘가에서 야영을 한다 했다. 하늘은 아직 파랗고,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고, 로호는 그 바람을 따라 어디론가 갔다. 그리고 나는 맥주와 함께 이 자리에 남았다. 에스떼야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한 후 몸과 마음은 가볍기 그지없다. 아직 산티아고까지는 20일 가량이 더 남았다. 이후 포르투까지 걸을 것을 생각하면 40일 정도가 남았고 총 여정의 20퍼센트가 끝났을 뿐이다. 그리고 몸과 마음은 시나브로 적응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유에 적응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