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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술한 공작새 Apr 30. 2019

나는 겁쟁이랍니다

까미노 12일차 - 겁쟁이였기에 행복했던 하루

  사회는 겁쟁이에게 철퇴를 내린다. 만용 역시 환영받지 못하지만 어찌 보면 만용으로 보일 수 있는 여러 영화들에게 사회는 관대하다. 혈혈단신으로 마피아 소굴에 찾아 들어가 연필 하나로 덩치들을 제압하는 존 윅이라든지, 핵무기가 터지기 10분 전 달아나는 악당의 헬기에 매달리는 에단 헌트 요원이라든지. 어쩌면 우리 모두 결말이 어떠할 것이라고 예측을 하기에 그럴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벤져스3의 마지막 장면과 햄릿의 죽음이 우리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 주는지도. 그들은 만용이라 생각될 정도로 용감한 자들이었는데 그들의 용기에 합당한 댓가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의 현실은 존 윅이나 미션 임파서블보다는 어벤져스3과 햄릿의 이야기와 조금 더 가깝다.     

 나는 용기 있는 자가 되고 싶었다. 존 윅이나 에단 헌트는 몰라도 적어도 콜럼버스 정도는 되고 싶었나보다. 그리고 그 덕분에 오늘 두 번 씩이나 죽을 뻔 했다. 오늘은 심심하기 그지없는 평탄한 국도 옆길을 십 여 km씩 걸었다. 어느 마을로 들어서는 길 위에서 있던 일이다. 앞에는 평탄한 국도가 있다. 왼쪽은 마을로 돌아가는 길이다. 어차피 평탄한 국도와 마을로 돌아가는 길은 2km 정도 앞에서 만난다. 마을로 돌아가는 길은 대신 1km 정도를 더 걸어야 한다. 지친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정해진 까미노는 아니었지만 용감하게 국도로 갔다. 그리고 딱 5분 후 후회했다. 국도 옆 갓길이 점점 좁아지더니 어느 새 딱 어깨 너비가 되었다. 옆으로는 트레일러들이 쌩하고 지나다닌다. 워낙 고속으로 달리기 때문에 지나간 후 몰아치는 바람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광활한 스페인 평야에서 치여 죽어 몰래 묻히면 수십 년 후 도로 확장 공사할 때나 발견될 것 같았다. 게걸음을 치다가 결국 국도 옆 수풀로 들어가 걸었다. 뱀도 심심찮게 나온다는 말에 조심하며 걷느라 원래 40분이면 갈 거리를 한 시간 동안 마음 졸이며 걸었다.     


 어제는 비교적 짧은 거리를 걷게 되어 야심차게 7km를 더 갈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의지박약으로 원 목적지인 21km 지점까지밖에 못 갔다. 그것이 마음에 걸려 오늘은 반드시 7km를 더 걷겠노라 다짐하고 길을 나섰다. 원 목적지인 23km 지점에 도달했을 때 다시 심한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오늘은 기필코 이동해서 승리의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7km를 꾸역꾸역 더 걸었다. 선험자가 그렇게 추천하던 따뜻한 알베르게와 좋은 식사가 눈에 잡힐 듯 말듯 했다. 그리고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앞서 걷던 동행분의 허탈한 표정과 스페인 평야를 쓸어내리는 강풍뿐이었다. 그랬다. 오늘은 그 마을의 숙소가 쉬는 날이었다. 마을 할머니 한 분이 지나가며 또 다시 7km를 가면 문을 연 숙소가 있을 거라 말씀하셨다 했다. 이전 마을까지도 7km, 앞으로도 7km. 선택의 여지가 없어보였다. 그러나 이후 마을에 전화를 해본 결과 그곳의 알베르게 역시도 문을 닫았다. 그 이후 마을은 그로부터 다시 7km 앞에 있다. 해는 산 너머로 뉘엿뉘엿 지고 바람은 점차 거세지고 있었다.    


 인간의 나약함 그리고 간사함은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여겨질 때 제일 크게 발휘된다. 어제 7km를 더 걷지 못했던 것은 발바닥이 아파서 그리고 앞으로 걸어야 할 길에 조그만 구릉이 하나 있기에 어쩔 수 없던 일이었다. 오늘 나는 나의 최선을 다 했다. 30km, 중간에 마을에서 고민하느라 헤맨 것까지 포함하면 32km를 걸었다. 하지만 어제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탓인지 천운은 없었다. 그래.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겁쟁이가 되기로 했다. 다시 7km를 걸어 마을로 돌아가서 내일 같은 길을 걸을 용기는 없다. 알베르게가 연 마을을 찾아 언제까지나 걸을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겁쟁이는 택시를 탔다. 안락함을 30유로에 사고, 수치와 패배감은 덤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내 발이 아닌 무언가로 이동한다는 사실은 죄스럽지만 아주 큰 행복을 선사했음을 고백한다.     


 무려 20km를 달려 도착한 마을에도 알베르게는 문을 닫아 돌아가는 택시기사를 황급히 불러 세웠다. 다행히도 3km 떨어진 다음 마을에는 문을 연 알베르게가 있다고 한다. 3km를 더 달렸다. 죄책감은 어느덧 씻은 듯 사라지고 드디어 몸을 뉘일 공간이 있음에 기쁨만 남았다.     


 자그마치 하루 분량을 뛰어넘었기에 일주일 전 팜플로나에서 헤어졌던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친절한 프랑스 아주머니 M, 대만인 C, 내 첫 동행 S, 여전히 자유로운 B까지. M의 말에 따르면 내가 묵으려고 계획했던 숙소로부터 이곳까지 모든 알베르게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절대 뒤로 돌아가지는 않았을 터인데다 중간에는 쭉 산길이었으니 만일 의지의 한국인 따위의 소리를 하며 계속 앞으로 나갔더라면 조난당하거나 죽거나 했겠지. 겁쟁이였기에 살았다.     


 7시 반부터 판다는 저녁을 기다리며 따뜻한 벽난로 앞에 모두들 둘러 모여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었다. 참으로 고된 하루였다. 죽음이 두 번이나 눈앞에 있었지만 지금은 장작이 활활 타는 벽난로, 빈대가 있을 것 같이 생겼지만 그래도 몸이 쉴 수 있는 벙커 침대들, 이제는 전우애가 느껴지는 사람들이 내 눈 앞에 있다.      

 두 시간을 기다려 먹은 저녁은 정말 최악이었다. 파스타에서는 양념에 실패한 케첩 떡볶이 맛이 났고 스테이크에서는 식초 냄새가 났다. 와인은 포도주스에 소주를 탄 듯 했다. 패배자의 저녁으로 잘 어울리는 메뉴와 맛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무슨 상관이랴. 겁쟁이가 된 대신 나는 하루 더 연명할 생명을 얻었고 따뜻한 쉴 장소, 식당 안을 뛰어다니는 귀여운 아이의 웃음소리와 경계심 많은 고양이의 발걸음을 얻었다. 분명 어떻게든 오늘 밤 23km를 더 걷고 산을 넘어 "살아서" 어느 마을에든 도착했다면 스스로와 사람들에게 전설로 남았을 테다. 영웅이 된 듯한 기분에 차서 언제까지나 즐겁게 무용담을 펼칠 수 있었겠지. 그러나 나는 오늘 겁쟁이가 되었고, 이런 것이 영웅이 아닌 겁쟁이들에게 주어지는 조그만 행복이라면 가끔씩은 겁쟁이가 되어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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