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성수동인데, 나 지금 부산인데, 나 지금 베를린인데 주위에 먹을만한 식당 좀 추천해봐!" 오랜만에 연락 오는 지인들의 대부분은 나를 맛집 지도 겸, 여행 가이드로 사용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지도 앱에는 수많은 별들(맛있는 가게 혹은 앞으로 방문하고픈 가게들을 저장한 목록)이 전 세계에 걸쳐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별들의 가치는 특히 사는 곳이 다른 사람들이 우연히 만났을 때 우왕좌왕하는 틈새를 타고 더욱 발휘된다. "그 별 좀 켜봐!" 앱을 열어서 내 위치를 중심으로 반경에 있는 별을 찾아낸다. "주변에 태국 음식점이 별 표시되어있네, 여기 어때?" '오늘도 별지도가 한 건 했다!' 덕분에 빠른 시간 안에 미션 완료.
잠깐 모르는 동네에 일을 보러 나왔는데 마침 떡볶이가 먹고 싶다며 연락이 올 때도 찰떡같이 주변 떡볶이 맛집을 추천해서 센스 있는 사람으로 등극하기도 한다. 큐레이션에 만족한 지인들이 다음번에도 잘 부탁한다는 칭찬을 들으면 어깨가 으쓱해지면서 보람차다.
맛집을 추천하는 일은 예민한 일이다. 고도의 심리전이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고 기분도 다르고 하물며 그날의 날씨까지 큰 변수로 작용한다. 항상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추천을 해줄 때에는 마지막으로 최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멘트를 곁들여야 한다. "내 입맛에는 살짝 달긴 한데 그 집 분위기랑 가격이랑 생각해 보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라든가. " 비싸지만 만드는 정성이나 재료를 생각하면 가볼 만 해." 이런 식으로 내 선에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전제를 깔아놔야 한다. "무조건 맛있어! 내가 10000% 보장한다니깐!" 이런 멘트를 날렸다가 만약에 그 사람의 컨디션과 음식의 조화가 맞지 않았을 때 맞이할 서먹서먹함이란... 상상하기도 싫다.
요즘처럼 맛에 대한 집념이 과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인생 냉면', '인생 햄버거', 인생으로 가득 찬 맛집들이 넘쳐난다. 맛을 표현하는 형용사들이 과히 신을 찾을 때와 같은 수식어로 사용되기도 하고 핵까지 동원되어 맛을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종교와 전쟁을 넘나드는 맛의 표현이라니..
이렇게 수많은 별표가 지도 위에 쏟아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직까지 인생을 걸만큼 평생을 걸고 지켜야 할 맛집은 찾지 못했다. 베스트 텐은 꼽을 수 있어도 베스트 원을 콕찝어내는 건 흠... 너무 어려운 일이다. 몇십 년 전통, 아니 몇백 년째 비법을 가지고 있는 곳들을 찾아갈 때마다 '나쁘진 않네.' '기대한 만큼 맛있네' 정도의 수준은 많이 있었는데 '이건 내 인생을 두고 감히 말하지만 심장을 뚫고 나오는 맛이야!'라는 표현은 아직이다.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먹어봐서 기대치가 계속해서 높아져서 그런 것 같애. 아니면 단짠단짠에 너무 길들여진 혀가 더 이상 음식 고유의 맛을 느끼지 못하고 자극적인 것만 찾아서? 혹은 진짜 배가 불러서, 언제라도 먹을 수 있다는 안일함이 한 끼의 소중함을 애초에 봉쇄해 버렸을 수도 있다.
죽기 전에 딱 하나만 먹을 수 있다면 무엇을 드시고 싶으세요? 이런 물음에 당당하게 나의 인생 맛집을 한마디 뱉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색이 분명할 것 같고 전문적으로 보일 것 같단 말이지... 그런 아우라를 동경해서 지금 인생 맛집을 찾겠다는 건 아니고 소신 있는 태도로 살기 위한 일종의 과정이라고 하면 그럴듯 해 보이려나? 사실은 이렇게 많은 맛집들 사이에 나 혼자 간직할 비밀 하나쯤은 만들어 두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렇다고 칩시다.)
누가 지금 이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면 "저는 부산 국제시장에 있는 떡볶이 집에서 파는 xx떡볶이요." 이러다가 "방금 한말 취소할게요. 건대 앞에 있는 떡볶이집으로 바꿀게요. 아니다 다시 한번만 생각해보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80이 넘어 90이 넘어 어디 남해에 있는 인생 맛집을 발견할지도 모르고 아니면 애초에 인생 맛집이란 없는 것이야.. 라는 깨달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전국 방방곡곡을 뒤져서 찾고 싶다. 한 숟가락 한 젓가락이 소중한 핵 맛 인생 맛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