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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s Jang Jan 18. 2022

초록색 립스틱

 "짜잔! 내가 선물을 준비했지!" 잠깐만 기다려보라며 엄마가 주섬주섬 핸드백에서 립스틱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찐 분홍 색깔의 립스틱, 하나는 아주 찐한 초록색깔의 립스틱이었다.


"어우 이런 걸 어떻게 바르고 다녀?" 놀란 것도 잠시

"초록색으로 나오는 거 아니야. 입술에 이렇게 바르면 촉촉하게 분홍색으로 바뀌어. 넌 촌스럽게 그런 것도 모르냐. 너희 엄마가 더 세련됐다. 그러지 말고 한번 발라바!"





어쩔 수 없이 입술 위에 몇 번 립스틱을 발랐다. "정말 초록색으로 안 변하네? 촉촉하긴 하다."

입술에 닿은 립스틱은 곧 찐한 분홍색으로 변했다.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화려한 색감이었지만 본인이 아무래도 너무 잘 산 것 같다며 자랑스러워하는 엄마에게 차마 촌스러운 색이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립스틱이 엄마 화장대에서도 나오고 다른 주머니에서도 나오고 도대체 똑같은 게 몇 개가 나오는지 개수를 세다가 엄마를 불렀다.


"엄마 도대체 몇 개를 산거야?"

"아니 이거 얼마 안 해. 5천 원 밖에 안 해서 10개 샀어. 나중에 이모도 주고 고모도 두고 친구도 주고 너도 주려고..."


옆에서 대화를 듣는 아빠는 뭘 그렇게 많이 샀냐고 쓸데없는 낭비라고 엄마에게 무안을 주었다.


"10개 사도 그냥 립스틱 한 개 값도 안 해요."

의기소침한 엄마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맞아. 요즘 한 개에 오만 원 하는 것도 얼마나 많은데, 이 정도면 싸게 잘 샀네."


처음 보는 브랜드의 립스틱은 새해를 맞이하여 들른 친척집에서도 계속 등장했다.

"고모들아 이거 하나씩 해라. 이거 진짜 촉촉하다."

엄마는 그렇게 고모들에게도 시범을 보여주었다.


 고모들에게도 이모들에게도 립스틱 전도사가 되어 하나씩 나눠 주었지만 아직까지 꽤 많이 남아 있는 립스틱을 보며 언제 다 쓸까 걱정을 하다가도 촉촉함을 자랑할 때 의기양양하게 립스틱을 돌려 시범을 보여주는 엄마의 천진난만함이 귀여워서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엄마 너무 귀여운 거 같아."

"뭐가?"

"엄마가 립스틱을 돌리며 시범을 보일 때마다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공감하는 이모들도 귀엽고 그냥 다..."

"별게 다 귀엽단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라미란 배우가 잠시 집을 비웠다가 돌아왔는데 집이 너무 깨끗하게 치워져 있는데도 기분이 안 좋은 엄마를 보며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류준열 배우가 하소연하는 장면이 있다.


 이에 이동휘 배우가 엄마는 자기의 도움이 없이 모든   되어 있는  서운한 거라고 말해 준다. 그제야 원인을 알게  아들은 이후 엄마를 연신 부르며 이것저것 엄마가 없으면  되는 일들을 일부러 만들어 놓는 . 극 중 엄마는  집에 내가 없으면 어쩔 뻔했냐며 타박을 하면서도 기꺼이 망가진 것들을 순식간에 수습한다. 그리고 미소를 띤다.


 만약 내가 "엄마 저번에 립스틱 너무 좋더라. 어디서 샀어? 나도 선물 좀 하게 또 사주면 안 돼?"라고 한다면 엄마는 귀찮아하면서도 추운 겨울 날씨를 뚫고 종종걸음으로 버스를 타고 화장품 집에서 립스틱을 한 무더기 사 올 것이다. 그리고 꼭 내가 시킨 것만 사 오는 것 아니 아니라 종업원이 좋다며 추천해준 제품들까지 몇 개 더 얹어서 사온 다음 전화를 할 것이다.


"내가 고생 고생을 해서 네가 부탁한 거 사놨어. 그러니깐 주말에 와서 가져가!"

"이런 엄마가 어딨냐? 감사한 줄 알아!" 투덜거리며 덧붙이기도 할 테다.


 그럴 때마다 항상 나는 이야기한다. "우리 서로 감사해야지." "빨리 서로 감사하다고 말하자"라고 한다.

사랑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도 모두 감사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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