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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s Jang Nov 16. 2020

구독 경제를 끊다.

최근 5년간의 삶을 돌이켜보면 이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양상으로 나의 일상이 변했는데 그 시작이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떻게 음악을 들었는지 / 영화를 보았는지 / 모르는 골목을 누비며 맛집을 찾았는지 / 먼 곳의 친구들과 연락을 했었는지 / 달랑 지도 한 장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살았고 / 심지어 여기저기 목돈을 감춰두고 매달 꺼내 썼던 순간들... 심지어 그 시간 동안 가졌던 인내와 체념들 조차도 가물가물하다. 


자. 그럼 이 모든 것들을 이미 경험한 내가 스스로 찾고 물어보며 체득했던 시절로 돌아간다며 잘 살 수 있을까?
삶이 지루하지 않을 수 있을까?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습관적으로 밤마다 영화를 틀고 (만약에 한 곳에 맘에 드는 영화가 없다면 몇 개의 플랫폼을 드나들며), 영화가 재미가 없다 싶음 바로 다른 영화를 찾는다거나, 쇼를 찾는다거나 다른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나의 변덕이 이렇게 심했나? 싶을 정도로 쉽게 흥미를 잃었고 인내심은 짧아졌다. 겨우 찾은 맘에 드는 영상과 함께 문 앞까지 달려온 배달음식을 먹으며 낄낄 거리는 모습이 그야말로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몇십 년 뒤에도 이러고 있는 모습이 상상하게 된 건 누구의 권유도 교훈도 아닌 순전히 아차! 하고 떠올린 한 순간 때문이었다. 무서움. 내가 의존하는 게 많아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내 마음대로 삶을 운전할 수 없을 것 같은 복잡하고 미묘한 불안정한 감정이었다. 



몇 달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선 구독하던 서비스들을 해지했다. 배달도 줄이고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사는 일도 지양하기로 맘먹었다. 초초함이 몰려오더니 머리가 깜깜해졌다. 


무슨 큰 진리를 깨달은 것도 아니고 세상과 단절하며 외딴섬에서 살 것도 아니면서 단호한 결정을 해야만 했다. 심지어 언젠가 또다시 너무나도 재밌고 편리한 서비스들을 "재가입" 하게 되는 날이 곧 올지도 모른다며 마음속 여지도 남겨 두었다. 


"재가입"을 향한 유혹이 찾아올 때마다 흔들리는 맘을 붙잡으며 책장에 꽂힌 읽지 않던 책들에 눈을 돌린다. 확 줄은 생활비를 보면서 아직은 버틸만하다고 정신승리도 진행 중이다. 친구들의 유머에 맞장구를 치지 못하게 되었고 최신 콘텐츠 유행에는 좀 뒤처진 듯하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언젠가는 이 무료함을 견뎌낸 경험이 꼭 필요할 것 만 같다. 지루함을 견디는 힘은 행복을 추구하는 힘만큼 내겐 중요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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