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9. 'OO'을 찾기 위한 나만의 여정

#한달어스 #한달자기발견 #30일글쓰기

by 문사모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라는 존재는 대단히 잘못된 출발선에 서 있다고 느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도무지 평범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 모든 것에서 답을 찾아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삐뚤어진 현실 속에서 살아갈 수 없었다.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고민하고 때로는 잠에 들지 못할 정도로 나를 괴롭히는 궁금증들이었다. 나는 답을 찾아야 했다.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의 이유를 강박적으로 알아내고 싶었다.



'가정의 비밀'을 찾아서
중학생 - 이십 대 초반


우선 나는 우리 집이 왜 이렇게 불행해졌는지 이유를 알아야 했다. 사실 더 어렸을 때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만약 내가 우리 집을 바꿀 수 없다면, 미래에 내가 만들어갈 나의 가정에는 그 영향이 미치지 못하도록 쓴 뿌리를 싹둑 잘라버리고 싶었다.


그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였다. 전문가(오은영 박사)가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와 그 가정을 관찰하며 문제의 원인을 발견해 해결해 주는 방송이었다. 프로그램 제목이 말해주듯 문제의 시작은 아이였지만, 정작 문제의 원인은 부모에게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보며 나름의 위안을 얻었다. '그래, 내 성격이 이런 건 다 내 탓만은 아냐!'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했다. 오은영 박사님이 우리 가정에 찾아오지 않는 한 내가 어른들을 바꿀 수는 없었다. 나는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그러다 할아버지의 과거를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27년생으로 그 당시 동국대를 입학할 정도로 굉장한 수재였다고 한다. 직업도 경찰이었는데, 오래전 아빠의 실수로 총기사고가 나서 (인명사고는 아니었다) 경찰복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나는 충격이었다. 매일 집에서 아무 일도 안 하고 책만 읽던 할아버지에게 그런 반전 과거가 있었다니..! 그 일로 인해 부자였던 우리 집의 가세가 기울었고, 할아버지와 아빠의 사이 또한 서먹해졌다고 했다.


그럼 아빠의 인생은 어땠을까? 아빠는 58년생으로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그 당시 사회가 요구하던 남성성과는 반대로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시를 쓰며 감성에 젖어 있던 아빠를 할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했고 두 사람의 관계는 급격하게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 아빠는 말을 심하게 더듬었는데 군대에 가서 심한 폭행과 구타를 당했다고 했다. 집 안에서 나답지 않음을 강요당했던 아빠,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로 폭행과 따돌림을 당한 아빠. 아빠가 왜 그렇게 외골수인지, 왜 저렇게 사회에 적응을 못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에게도 사정은 있었다. 3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엄마는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다정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없는 살림에 고등학생 때부터 일찍 노동 전선에 뛰어들게 되었고, 먹고사는 일이 바빠 마음에 여유를 갖기 어려웠다고 했다. 사회 부적응자인 아빠와 마음에 여유가 없던 엄마는 처음부터 맞지 않았다. 아니 맞을 수가 없었다. 나는 조금씩 부모님의 아픔과 인생을 이해하게 되었다.


신기했다. 가족의 아픈 비밀을 알게 되니 마음이 평안해질 뿐만 아니라 나를 힘들게 했던 가족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런 과정으로 인해 나는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조금 더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찾아서
이십 대 중후반


2017년은 나에게 굉장히 큰 변화가 있던 한 해였다. 잘 다니던 회사가 경제적인 사정으로 문을 닫게 되었고, 여러 번의 이직 끝에 결국 나는 아르바이트나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십 대 후반에 안정적인 직장도 없이 백수나 다름없는 내 모습. 나의 경력으로는 번듯한 직장은 다닐 수 없었고, 그동안 다녔던 회사에서조차 나는 이방인처럼 겉돌기만 할 뿐이었다.


가혹한 현실 앞에 나의 이상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꿈 따위 집어치우고 먹고살 궁리나 하자, 하고 싶은 일은 개뿔~ 인생이란 원래 이렇게 볼품없고 지질하다, 결국엔 돈이 최고다.'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손님이 많이 없는 곳이라 책을 정말 많이 읽게 되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한 작가의 책부터, 깊고 심오한 주제의 종교서적까지. 일주일에 평균 3권의 책을 읽으며 수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의 의미'가 내게는 부질없게 느껴졌다. 이십 대 중반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첫 직장에 들어가 나름의 경력을 쌓고, 나의 경력 대비 더 효율적인 곳으로 이직을 반복하고, 삼 심대 초반쯤 어느 정도의 결혼 자금을 모아 좋은 남자와 결혼을 하는 것. 이게 성공적인 인생인가? 이런 인생이 좋은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세상이 말하는 천편일률적인 성공의 기준에서 탈출하기로.


인생을 꽃으로 비유하자면 이십 대 후반의 나는 이제 막 싹을 내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꽃은 꽃잎을 내기 전까지는 그 줄기가 다 그 줄기 같고 어떤 특별한 모습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고작 그런 단계인 내가 이미 꽃을 피운 사람들을 보며, 그들과 나를 비교하는 게 의미가 있는가? 그들과 나는 종자부터가 다를 수 있고, 오히려 꽃이 아닌 뿌리를 깊이 내리는 *모소 대나무일 수도 있지 않을까?


*모소 대나무 : 일명 모죽(毛竹)이라 불리는 대나무로 씨를 뿌리고 나면 처음 4년 동안은 3cm밖에 자라지 않다가 5년이 되는 대해 하루에 30cm 가까이 쑥쑥 자란다. 다 자라면 15m가 훌쩍 넘는 큰 나무가 된다.




'평생의 반려자'를 찾아서
이십 대 후반


솔로였던 친구들이 하나 둘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 소식까지 들리니 n년째 연애를 못하고 있던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외로움을 잘 타던 나였지만,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했기에 오래도록 운명의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힘들었다. 이미 연애부터 결혼에까지 골인(?)한 인생 선배들은 '너무 급할 땐 오히려 안 생긴다'라고 말했지만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라는 생각과 '나 정말 매력 없나?'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가만히 있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것 같다고 판단되자 나는 본격적으로 소개팅을 하기 시작했다. 무분별 하게 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는 소개는 마다하지 않았다. 상대는 나를 맘에 들어했지만 내 맘에 들지 않던 상대도 있었고, 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나는 연애를 시작한 줄 알았지만 상대는 그저 썸이었던 적도 있었고, 양다리의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도 안된다고? 절망적이었다. 그렇게 되니 나중에는 내 이상형이 아니어도,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아무나 만나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 거지? 나에게 사랑이란 무엇이지? 점점 헷갈리지 시작했다.


나는 흔들려도 좋으니 사랑이 하고 싶었다. 지질한 사랑이라도 아무렴 좋으니 그 사랑이란 걸 좀 해 보고 싶었다. 적어도 나에겐 그런 사랑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외로움에 잠식당한 마음은 이성을 잃고 사랑에 대한 기준을 상실해버리고 말았다.


사실 주변만 돌아보아도 연애 끝, 행복 시작은 아니었다. 사랑이 가져다주는 진정한 의미와 행복을 알기 위해선 사랑의 본질과 사랑의 함정을 알고 있어야 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축복'이라는 말의 전제는 감정적 통함이나 우연의 일치 따위가 아니라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는 것이었다. 사랑은 마냥 좋은 것이 아니며 사랑으로 인해 내 삶이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기에, 나를 지키고 상대방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더 깊은 관계를 위해 때로는 서로가 성숙해지는 시간을 기다려줘야 함을 알게 되었다.


나는 결국 혼자인 시간을 잘 견뎌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이 당시 깊게 고민했던 마음으로 남편과의 관계적 어려움도 잘 극복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아무나 만나기만 해도 좋다'는 마음으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면 나의 결혼 생활은 위기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단어 안에 숨겨진 무수한 의미(헌신, 인내, 노력, 배려, 오래 참음 등)가 가치 있음을 알았기에 나는 잘 이겨낼 수 있었다.




'나답게 사는 법'을 찾아서
결혼 ~ 현재


'나답게 산다는 건 무엇일까?' 나는 이 고민을 결혼을 하고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보통은 결혼을 하게 되면 가정과 육아가 우선순위가 되어 '나라는 사람'의 인생은 뒤로 밀려난다고 하지만 나는 반대였다. 앞으로 더 많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더 늦기 전에 나만의 길을 찾고 싶었다. 이 질문은 시발점은 회사 일에 회의감을 느끼고 나서부터였다.


2019년 1월에 입사한 회사는 약 1년 동안은 정말 좋았다. 배울 부분도 많았고, 그 시간 동안 쑥쑥 성장하는 내가 느껴졌다. 하지만 2년 차가 되면서부터는 그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1년 동안 배운 업무는 그다음 해에도 똑같은 루틴으로 진행되었고, 매달 책이 바뀌는 것 외에는 특별하게 달라지는 업무가 없었다. 나는 마케터로 입사했는데, 왜 이렇게 일이 재미없지? 왜 매번 비슷한 방식으로 일을 진행해야 하지? 왜 아무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 거지? 어느 순간 점점 흥미를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건강도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원체 체력이 약한데, 이른 시간에 출근을 하다 보니 피로가 몸에 쌓이기 시작했고 입사한 지 한 달만에 폐렴에 걸렸다. 그 이후로 이상하게 몸이 점점 더 피곤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갑상선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병명은 갑상선 항진증. 저하증과는 달리 평생 약을 먹어야 될지도 모르는 병.


업무에 흥미도 점점 떨어지고 건강도 안 좋아지니 도저히 일에 집중할 수 없는 시간들이 많았다. 팀장님까지 '너 왜 이렇게 의욕이 없어졌어. 원래 안 이랬잖아~'라고 한 소리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정말 내가 문제였을까? 내가 건강관리를 못해서, 내가 열정이 없어서, 내가 문제여서 지금 이 일이 나에게 힘이 든 걸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어느새 또 일 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도저히 이런 상태로는 회사를 버틸 뿐이지 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버틸 만큼의 메리트가 있는 곳도 아니었다. 이직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지금 당장 어떤 회사를 들어갈 것이 아닌 나에게 맞는 일을 찾기로 했다. 그래서 찾은 것은 아래와 같다.


1.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거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일

2.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느슨한 연대가 필요한 일

3. 전반적인 사회, 경제, 문화에 대해 알고 트렌드에 민감해야 하는 일

4. 그때그때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순발력 있고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

5. 단순히 유행하는 일이 아닌 사람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의미 있는 일

6. 일을 하면 할수록 나 스스로가 성장할 수 있는 일

7. 다양한 사람과 직업군을 만나며 서로에게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일

8. 나만의 스토리, 나만의 기준이 있어야 하는 일


특별히 어떤 직업군으로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내용으로 봐서 나는 기존의 직장인은 나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감히 퇴사를 결정했다. 평소 해보고 싶던 글쓰기도 하고 그림을 위해 클래스도 수강했다. 나에겐 나를 탐구하고 나를 성장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어떤 회사에 들어가지 말고, 일을 하더라도 프리랜서나 *긱 워커의 형태가 적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긱 워커 : 고용주의 필요에 따라 단기로 계약을 맺고 일회성 일을 맡는 근로자를 이르는 말로,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공유경제가 확산되면서 등장한 근로 형태




언제나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나


언제나 내 안엔 풀리지 않는 질문들과 답답함이 있었다. 그냥 쉽게 생각해도 될 문제마저 다 꺼내놓고 하나하나 분석하곤 했다. 그래서 때로는 나 스스로 함정에 빠지기도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겼지만 그런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나는 지나온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 고뇌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만의 인생 기준도 생겼고 현재 이렇게 쓸 수 있는 글감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우리 엄마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요!'라거나 '성공적인 인생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라거나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될까요?' 라거나 '지금 퇴사하는 게 맞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대답을 대신할 다양한 경험들이 있다. 나는 내 인생에 강박적으로 집착했고, 나를 괴롭히던 질문에 대한 답도 찾게 되었다. 나는 그런 내가 꽤 자랑스럽고 꽤 사랑스럽게 보인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인생의 어려움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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