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다시 태어난 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by 문사모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소설이 아닙니다


영화 ‘예수는 역사다(The Case for Christ)’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 영화는 미국의 언론인이자 냉철한 무신론자였던 '리 스트로벨'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기자였던 그는, 갑작스럽게 예수님을 믿게 된 아내의 변화가 이해되지 않았고, 그 믿음을 꺾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허구의 인물이며, 부활은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을 증명해 내기 위해 직접 역사적 자료와 학문적 근거들을 추적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의심의 조각들을 맞춰갈수록 오히려 그의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학자, 법의학자, 고고학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는 결국 부인할 수 없는 진실 앞에 서게 됩니다.


“예수는 실제로 존재했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며, 다시 살아나셨다.”


결국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훗날 목회자가 되어 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고백은 책과 영화로 만들어져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전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누군가의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회에서만 통용되는 종교적 메시지도 아닙니다. 이 놀라운 복음이 “진짜 내 이야기”가 될 때, 사람은 완전히 새로워집니다. 저 역시, 그 진리를 온몸으로 경험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저를 사랑하시나요?


제주도의 열방대학, DTS 훈련 중이던 29살의 저에게 가장 간절한 기도 제목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저를 사랑하신다는 걸 믿고 싶어요.”


신앙생활은 오래 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가슴 깊이 와닿지 않았습니다. 늘 하나님과 거리감이 있었고, 그분은 저에게 늘 무언가를 요구하시는 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저 ‘예배하고, 헌신하고, 순종해야 하는 분’ 정도로만 인식되었죠. 저는 제 안에 늘 따라다니던 “하나님이 나를 정말 사랑하실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고, 그래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주도로 떠난 것이었습니다.


훈련 초반엔 천국 같았습니다. 매일 예배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고, “이제는 나도 온전해지는 걸까?”라는 희망도 품게 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고 제 안의 깊은 쓴뿌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내 진짜 모습을 알고 떠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삽시간에 제 마음을 잠식했습니다. 견디기 힘들었던 저는 간사님들께 도움을 요청했고 그날 밤, 제 인생을 바꾸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간사님들이 저를 위해 안수하며 기도해 주시는 중, 제 안에서 알 수 없는 울분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리와 함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외쳤습니다.


“난 버림받았어!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예배실이 떠나갈 만큼 울부짖으며 온몸을 비틀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마구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순간의 저는, 마치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 같았습니다.


“하나님도 날 버렸어!”


내가 아닌 내가 더 크게 울부짖자 간사님들께선 더욱 힘 있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에요, 자매님! 하나님은 자매님을 사랑하세요. 따라 해 보세요.”

“아니야, 하나님은 날 사랑해! 난 버림받지 않았어!’”


몇 번이고 따라 외쳤습니다. 그리고 정말… 제 안을 억누르던 무언가가 떠나가는 걸 느꼈습니다.


그날 밤, 저는 무너졌고, 동시에 새로워졌습니다. 환경도, 실력도, 외적인 조건도 달라진 게 없었지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진리가 마침내 제 ‘믿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증거가 십자가에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분명히 믿어졌습니다. 저는 그렇게 예수님과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정체성은 죽음과 부활 안에서 발견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 말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내 모습을 보면 그 말이 도저히 실감 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건 우리 안에 있는 ‘죄’ 때문입니다.


죄는 단지 나쁜 행동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착각, 그분과 멀어진 마음 그 자체를 뜻합니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어느새 자기 욕심, 자존심, 두려움이 나의 기준이 되어 살아가게 만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간극을 메우시기 위해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지 ‘대신 죽으심’이 아닙니다. 그분의 죽음으로 나의 옛 자아도 죽고, 그분의 부활로 나 또한 새로운 자아를 입게 되는, ‘정체성의 변화’가 바로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인 것입니다.


제주도에서의 뜨거웠던 기도 이후, “나는 버림받았어”라는 그 외침은 더 이상 제 정체성이 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상처 난 자리에 예수님이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의 가치는 나의 피로 이미 증명되었다.”


이 믿음이 제 안에 자리를 잡자, 삶 전체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문제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저의 ‘눈’이 달라졌고, ‘기준’이 새로워졌습니다.


이전에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 무너졌다면 이제는 말씀 한 구절로 다시 일어납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조건부’로 생각했다면 이제는 그 사랑이 ‘이미 주어진 것’ 임을 믿습니다. 이전에는 문제 앞에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묻던 제가, 이제는 “이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어떤 일을 이루실까?”를 묻게 되었습니다.


같은 상황인데도, 마음의 태도가 다르니 표정도 바뀌고, 삶의 반응도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저에게 이렇게 말해주셨습니다.


“사모님은 참 따뜻한 에너지를 가지고 계시네요.”


정체성은 내 삶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온전히 드러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나는 은혜, 바로 그것이 우리 안의 진짜 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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