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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little deer Jan 22. 2020

아침의 피아노

2020-01-21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기가 힘들다. 그 말들이 나이건만, 그 말들이 없으면 나도 없건만. 
나는 말해야 한다.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면 안 된다. 그것이 나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다. p.166.


실은 어제 아침이다. 책을 고르면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오늘은 어쩌다 보니 눈뜨자마자 물 한잔을 마셨을 뿐 아침도 책도 없다. 어제부터 어쩐 일인지 몸이 축축 처지고 속은 답답증이 일었다. 배와 허리가 아프기 시작해서 그날이구나 했지만,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었다. 낮에 친구와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해봤는데, 나만 그런 것도 아니더라. 집에 돌아와 소고기 뭇국을 끓이며 너도 나도 너무 애쓰느라 그런가 싶어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저녁을 챙겨 먹고 요가를 다녀오고 수수보리와 놀아주고 났더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친구와 카페에서 성격 유형 검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생 시절부터 나의 MBTI 결과는 매번 ENFP였다. 소위 스파크형, 어린 왕자형, 재기 발랄한 활동가형 등으로 불리는 성격 유형으로 대체로 외향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며 따듯하며 열정적인 편이라고 한다. 그런데 며칠 전에 다시 해봤더니 결과가 INFJ로 나왔다. 보통 예언자형, 순교자형, 그리고 내가 했던 간이 검사에서는 '선의의 옹호자'형으로 불린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2년 전쯤, 아니 해가 바뀌었으니 3년 전에 회사에서 잠깐 무료 상담을 받았을 때부터 그렇게 바뀌어 있었던 것 같다. 세월이 가면서 변하기도 하겠지만, E가 I로 바뀐 것에 쫌 주목하게 된다. E여야 하는데 I로 바뀐 것 자체가 명랑했던(!) 나의 우울함이 드러난 것일 수도 있고, 또 그때 내 안에서 뭔가가 크게 바뀌었나 보다 싶기도 하고. - 친구에게 "한마디로 기가 꺾인 거지"라고 말했더니 애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무엇보다 내가 '보기 보다' 몹시 소심하고 수줍음이 많은 인간이라는 것을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된 느낌도 드는 것이다. 특히 친구가 INFJ에 대해 '~이로 인해 주변 가까운 친구나 동료는 이들을 사교성이 많은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들은 갑자기 물러서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잠시 생각을 비우고 재충전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를 원합니다.'라고 설명한 부분을 콕 찍어 가리켰을 때는 "정답!"을 외칠 뻔했다. 잘 알아두란 말이야! 흐흐. 뭐, MBTI를 혈액형이나 별자리별 성격만큼이나 신빙성 없는 얘기로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단 재미는 있으니 나쁠 것 없지. 게다가 끊임없이 내가 누군지 알고 싶고 또 이런 나를 알아주길 원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올리 언니도 INFJ, 냥신 나응식 수의사도(우연히 유튜브에서 발견) INFJ, 마더 테레사도 INFJ 유형이라는 사실! 가장 흔치 않은 성격 유형으로 인구의 채 1%도 되지 않는, 영원한 아싸이자 마이너 인생이라고나 할까. 왠지 마음에 든다. 흐흐.


답답증을 해소하기 위한 처방으로 친구가 추천한 영화 <Wild>를 보고 자야겠다. 얼린 요구르트도 한 개 먹어야지. 갑자기 <느티의 일월>에서 새겨두었던 문단이 떠오른다. '영이, 무서움 없이, 쭈뼛쭈뼛함 없이 생을 모험하오. 여자의 생이 따로 규정지어 있는 게 아니오. 인간으로의 모험, 체험, 지식, 꿈, 행복, 불행 모두 힘껏 모험해 봐요. 그리고 작은 일에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기지 말고 좀 더 인간적인 소중한 일에 마음을 쓰기 바라오. p.124.' 그래, 친구야, 우리 너무 애쓰지는 말고, 또 애쓰다 지치면 소고기도 먹여주고 그러자.


그가 침대 방에서 살아간 말년의 삶은 고적하고 조용한 삶이 아니었다. 그건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삶이었다. 침대 방에서 프루스트는 편안하게 누워 있지 않았다. 그는 매초가 아까워서 사방으로 뛰어다녔을 것이다. 그가 종일 침대 방에서 무엇을 했는지 셀레스트조차 모르지만 독자는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마지막 책은 100미터 달리기경주를 하는 육상선수의 필치와 문장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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