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9
알파벳문자에 속하는 글자가 독특한 추상적 특징이나 성질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런 연관성은 학교에서 등급을 매길 때 사용하는 문자들에서 잘 보인다. A는 우수하고 B는 A에 미치지 못하고(B급 목록, B급 영화), C는 보통, D는 실망스럽고 F는 낙제, 수치스러운 표시다. 그렇지만 A는 또 간통 adultery이고 너새니엘 호손이 헤스터 프린(소설 <주홍 글씨>의 주인공)에게 낙인으로 찍었던 주홍 글씨다. 슈퍼맨은 커다란 빨간 S가 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자서전 <말하라, 기억이여>(뮤즈의 어머니에게 호소하는 제목)에서 알파벳문자와 색깔을 연관시키는 데 몇 단락을 할애한다. 그의 "청색 그룹"은 "강철 같은 x와 뇌운 z, 허클베리 h"를 포함한다. 그는 이어서 말한다. "소리와 형태 사이에 미묘한 상호작용이 있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 q는 k보다 더 갈색을 띠고 s는 옅은 파란색 c와 달리 하늘빛과 진줏빛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 무지개를 의미하는 단어를 (...) 나의 사적 언어로 옮기면 발음이 거의 불가능한 kzspygv다." 그렇다면 나보코프는 환각을 일으키며 무지개 색깔(red orange yellow green blue indigo violet)을 영어 두문자 Roy G. Biv로 기억하는 방법에 유념했을 듯싶다. p.43.
아침으로 '그릭 데이'에서 산 요거트에 블루베리와 꿀,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콤마퀸의 그리스 이야기가 생각난 것은 '그릭 요거트' 때문이 아니라 어제 읽은 <셀프>에 그리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 우리의 다른 점들이 우리를 갈라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에서는 우리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도록 한 것이 바로 그 다른 점들이었다. p.206 - 정확히 말하면 '그리스'가 아니라, <아우구스투스>에서부터 고대 그리스, 로마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났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과 휴가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도 포함된다. 모든 것이 변해버린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심난하기 짝이 없는 기분이다. 아무튼 콤마퀸의 책답게 겉으로는 여행기나 에세이처럼 보이지만 한 문단, 한 페이지마다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가 넘쳐흐른다. 물론 그녀 다운 유머도 빠지지 않는다. 집중해서 읽느라 진도는 많이 못 나갔다.
어제는 올해 가장 기쁜 소식을 들었다. 무의미한 감탄사를 제외하면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지만, 만약 그걸 의미하는 단어를 나의 사적 언어로 옮기면 발음이 거의 불가능한 kzspygv다. 깜깜한 가운데서도 환하게 떠오른 무지개.
내일은 읽다 만 <말하라, 기억이여>를 펼쳐야겠다. 읽다 덮어둔 책이 또 쌓여가는 와중에 새 책들도 장바구니를 떠나 문 앞으로 오고 있다. 내일 당장 세상이 얼어붙는다 해도 한동안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올림포스 신들 중에서 아테나는 가장 정의하기 어려운 속성을 지닌 여신이다. 오디세우스가 우여곡절을 겪는 남자라면 아테나는 변신의 귀재다. 호메로스의 작품 속에서 그녀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멘토, 가족의 오랜 친구, 조숙한 꼬마 소녀, 돼지를 기르는 사람의 오두막집 문밖에 있는 훤칠하고 잘생긴 여자, 제비.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의 방패(뱀들이 달린 염소 가죽)를 지니고 있고 이것은 메두사의 머리로 장식되어 있다. 그녀는 전쟁과 연관되지만 교전보다 외교를, 무력보다 지력을, 무작정 달려드는 공격보다 전략을, 무질서보다 끊임없는 주의를 장려한다. 그녀는 우리를 무섭게 할 수도 희망차게 할 수도 있다. 그녀는 침략자인 동시에 보호자다. 아테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우리의 잠재력을 최대로 끌어낸다. 그녀는 확실히 오디세우스의 친구이고, 어쩌면 어딘가로 가려고 노력하는 모든 이의 친구일 것이다. p.80-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