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3
제바스티안은 곧 진정한 자유, 즉 사람들이 경의를 표하는 예술가로서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보수도 후한 편이었다. 뮐하우젠에서 받았던 봉급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225플로린과 밀가루, 땔감용 나무를 받았다. 돈은 바흐에게 아주 중요했다. 돈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인 음악을 만드는 일을 가능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버터, 포목, 포도주(그의 가계에서 포도주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등 가계 지출을 장부에 꼼꼼히 기록했다. 이러한 검소한 생활 속에서도 그는 비싼 악기를 구입하는 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다섯 대의 쳄발로와 클라비코드, 류트 쳄발로 두 대, 스피넷 한 대, 바이올린 두 대, 비올라 석 대, 첼로 두 대, 저음 비올라 한 대, 비올라 다감바, 류트, 피콜로 등을 소유할 수 있었다. p.51.
지난 토요일, 그러니까 10월의 마지막 날에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는 모임에 참석했다. 피아니스트 랑랑의 2020년 레코딩,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에서 녹음한 버전을 들었다. 무려 한 시간 반 동안 집중해서 가만히 음악을 듣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고 또 좋았다. 듣기 전에 저녁을 먹으면서 인스타그램을 휙휙 넘기다 어디선가 '질서는 편한 것, 아름다운 것, 자유로운 것'이라는 캠페인 구호를 봤었는데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다가 갑자기 그 말이 떠올랐다. 물론 15번과 25번의 경우 내게는 '편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아리아로 시작해 아리아로 끝나는 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책 <부처와 아침을>의 한 구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부처라니, 죄송합니다!) 그리고 아마 올리 언니가 나에게 주었을 이 책의 제목, 그러니까 '천상의 선율'이 어떤 의미인지 대번에 이해가 되었다. 책장에 꽂아두고 언젠가는 읽겠지 했던 이 책을 오늘에서야 펼쳤다.
1731년, 바흐는 새로운 파르티타 여섯 곡을 <쳄발로 연습곡집>으로 묶어 냈다. 사실 이 파르티타가 처음 발표된 것은 1726년이었다. 당시 바흐는 41세였는데, 그가 책으로 출간할 만큼 잘 만들어졌다고 판단한 것은 그 작품이 처음이었다. <쳄발로 연습곡집>의 마지막 부분에는 <다양한 변주의 아리아>라는 훌륭한 작품이 들어 있었다. 이 곡은 1742년에 <골트베르크 변주곡>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이 제목은 음악애호가이자 불면증 환자인 카이저링크 백작을 위해 밤마다 이 곡을 연주한 바흐의 제자이자 쳄발로의 비르투오소 테오필루스 골트베르크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p.102.
구조적으로 완벽하고 그냥 듣기에도 아름다운 음악. 결코 녹록지 않았을 생활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고 끈질기게 창작열을 불태운 삶. 눈이 멀고 귀가 안 들리고 심지어 미쳐버리기까지 하면서도 끊임없이 애쓰며 훌륭한 작품을 남긴 예술가들. 그 시간과 이야기 속에 담긴 순수한 기쁨과 치열한 고민과 은근한 유머와 무한한 자유. 그리고 사랑. 그런 귀한 것들을 마음에 담고 살아가야지, 생각한다.
... 사실 이제까지 어떤 첼로 연주자나 바이올린 연주자도 그 곡을 완벽하게 연주해 내지 못했다. 대개는 사라방드나 가보트 혹은 미뉴에트 등 한 악장씩은 자주 연주되지만 나는 전곡을 연주한다. 전주곡과, 춤곡으로 이루어진 다섯 개의 악장 모두 완벽한 구조와 리듬을 갖추고 있어 하나의 훌륭한 건축물과 비견된다. 그래서 이 작품을 흔히 정열이 배제된 기교적이고 지적인 구조물이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얼마나 잘못된 편견이란 말인가! 얼핏 차갑게 들리는 그 선율 속에서 그토록 온화하고 시적인 광채가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 것일까!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바흐 음악의 정수이며 바흐야말로 음악의 정수이다. 파블로 카잘스 <A. E. 칸에게 들려준 나의 인생>, 1970년 p.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