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4
최초의 유서를 조사하고 제목을 생각해 보니 더 혼란스러워졌다. 잘못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불편한데, 우리 자신이 잘못 기억될 수도 있다. 후세인들에게 부정확하게 기억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신경이 쓰여 견딜 수가 없다. 최초의 유서를 쓴 이가 진짜로 자살을 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나는 내 영혼에게 입을 열어 말한다." 남자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영혼은 마지막으로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설득한다. 그가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영혼과 벌인 논쟁의 결과, 남자가 살기로 마음먹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어쩌면 죽음과 대면하면서 살아남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를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유서만큼 생의 의지와 닮은 것도 없다. p.14-15.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일곱 시 오십 분이었다. 여덟 시에 맞춰둔 음악 알람을 끄고 - "지니야~ 알람 꺼줘!" - 내 배를 가로질러 엎드린 보리를 한참 쓰다듬어주고 나서야 침대에서 탈출했다. 오늘은 구조한 길고양이 '가지'를 병원에 데려가야 하고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도 가야 해서 마음이 바빴다. 어젯밤에 오늘 공연 프로그램을 예습하고 늦게 잠들었는데 그래도 푹 자서 개운해 다행이었다. 냉장고를 대충 털어 아침을 먹으면서 며칠 전에 도착한 책들을 보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신작을 골라 펼쳤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와 <내가 여기 있나이다 1, 2>는 아직 다 읽지도 못했으면서도 그의 신작이 나왔다길래 얼른 주문한 것이다. 그런데 첫 장부터 너무너무다. 역시. 올리 언니에게 얼른 말해줘야지.
작가는 가장 오래된 유서를 <종말의 서>라는 책에서 읽었다고 하는데, 그의 말처럼 검색해도 책은 안 나온다. 아무튼 '<종말의 서>를 통해 내가 들이쉬는 숨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숨에 섞여 있던 분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알았다. p.11.' 이런 문장이 첫 장부터 등장해주시니까, 또 뒷장에는 '그런 사실이 암시하는 바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내가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브루투스, 너마저?)을 들이마셨다면 베토벤(나는 천국에서 들을 것이다)과 다윈(나는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다)의 숨도 들이마셨다는 얘기다. p.12.' 이런 문장이 이어지니까, 단숨에 빠져들 수밖에. 겨우 몇 장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 <아우구스투스>며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그리고 '고. 부. 해'의 진행자였던 고 박지선 님(그녀에게 평안만 가득하길...)이 차례로 지나갔다.
아침을 먹은 후에 가지를 병원에 잘 데려다주고 매콤 새콤한 태국 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택시를 잡아 탔는데 1킬로미터도 못 가 사고가 났다. 결국 '타다 프리미엄'을 불러 친구의 작업실에 안전하게 도착했고, 앞으로는 무조건 '타다' 택시만 타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니면 운전을 좀 해보든가(제발!). 가지의 퇴원 수속이며 쉴 공간 마련은 호구 1호와 2호, 3호에게 맡겨두고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옆 자리에 앉은 덩치가 아기 코끼리 만한 여자가 공연 내내 숨을 쌕쌕 쉬는 통에 몹시 괴로웠고, 앵콜곡 연주할 때 누군가의 전화벨 소리가 울려서 기분이 나빴다. 물론 연주는 환상적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퇴원한 가지를 보러 갔고, 저녁으로 치킨을 시켜 나눠먹었고, 따뜻한 바닥에 누워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어쩌나 걱정했고, 슈만 숲의 정경 8번을 계속 흥얼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하루가 길었네. 카라 동물영화제 사이트에서 보려고 찜해둔 영화는 보지도 못하고 폐막하게 생겼고.
전 지구적 위기는 으레 저기 멀리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데, 우리의 상상력이 피로에 전 탓에 이런 현상은 더욱 악화된다. 우리가 직면한 위협의 복잡성과 규모를 생각하면 진이 빠진다. 우리는 기후변화가 오염, 탄소, 해수 온도, 열대우림, 만년설 등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우리의 개인행동, 혹은 집단행동이 어떻게 허리케인의 속도를 시속 48킬로미터 가까이 부풀리거나 시카고를 남극보다 더 추운 곳으로 만드는 극소용돌이에 기여하는지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것도 다들 알고 있다. 또 우리 삶이 이미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쉽게 잊는다. (...) 보험료 인상을 그러려니 하고, 대도시까지 덮치는 산불, 매년 닥치는 '1000년 만의 홍수', 전대미문의 사망자를 낳은 기록적인 혹서 같은 극단적인 날씨도 이제는 그냥 날씨일 뿐이다. p.23-24.
지구를 걱정할 새도 없이 피곤해져 버렸다. 망했다. 얼른 전원이나 끄자.
물론 전등을 끄는 집단행동만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1600만 명의 미국인이 군 복무를 하고, 4조 달러가 넘는 돈을 쓰고, 미국 이외에 12개국이 넘는 나라들이 군대를 동원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집단행동을 하지 않아서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보라. 밤에 전등 스위치를 끄지 않았기 때문에 나치의 깃발이 런던, 모스크바, 워싱턴 D.C. 에서 휘날리는 사태를 막지 못했다고 상상해 보라. 그런 집단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 세계에 남은 1050만 명의 유대인을 구하지 못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보라. 그렇게 된다면 시민들이 발휘한 극기심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어떤 희생도 희생이 아닐 것이다. p.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