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뒤에 숨은 사랑

2018-06-07

by a little deer
"오늘 여기 왔던 것 기억할 거지, 고골리?" 아버지가 손으로 귀마개를 하신 채 뒤돌아서서 그를 보며 물었다.
"얼마나 오래 기억해야 되는데요?"
바람이 휙 불어왔다가 사라지면서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멈추어 서서 기다리다가 고골리가 가까이 오자 손을 내미셨다.
"언제나 기억하도록 해라." 고골리가 다가서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어머니와 소냐가 기다리고 있는 곳을 향해, 아버지는 고골리를 데리고 방파제 위를 다시 천천히 걸었다.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데까지 우리가 같이 왔었다는 것을, 너와 내가 여기까지 함께 왔었다는 것을 기억해라." p.244.


어제 자매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얼마 전 뉴욕에 일하러 간 친구가 집을 (벌써!) 잘 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층에는 집주인인 인도인 가족이(할머니와 함께) 살고, 2층의 방 하나에 세 들어 살게 됐다고. 그 얘기를 듣자마자 자동으로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이 생각났다. 덕분에 오랜만에 책장에서 꺼내 읽는데 여전히 좋다. 전에는 그냥 지나갔던 부분에서 멈추기도 했다. <외투>의 작가 니콜라이 고골리에서 따온 주인공의 이름. 그러고 보니 <외투>는 아직도 못 읽어봤네. 언제 읽어보나.


늘 좋아했던 부분도 괜히 다시 써본다. '가죽엔 주름이 잡혀 있었고, 무거웠으며, 아직도 체온이 남아 따스했다. 왼쪽 구두에 묶여 있는 구두끈이 구멍 하나를 건너뛴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의 이런 작은 실수에 아시마는 이내 마음이 가라앉았다. p.18.' 벵골에서 선을 봐서 결혼한 고골리의 부모, 아시마와 아쇼크가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다. 아무튼 읽다 보면 아시마와 아쇼크에게서 나의 엄마와 아빠를 보기도 하고(이 나이 먹고도 어머니와 아버지 아니고 엄마와 아빠라니, 으이그) 멀리 이민 가서 사는 친구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고골리에게서 나를 보기도 하고 옛 애인을 떠올리기도 하고. 이제야 보는 옮긴이의 말(박상미)에도 같은 소리를 써두었네. '나는 지난 몇 개월 동안,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미친 사람처럼 혼자 웃다가 울다가 하면서 이 책을 번역했다. 그것은 아시마와 아쇼크의 삶에서, 고골리와 모슈미의 삶에서 내 인생을 엿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삶이란 건 보편적이면서 개별적인 하나의 '이야기'인가, 하나마나 한 개똥철학 같은 소리를 괜히 해본다. 조만간 <외투>나 읽어봐야지.


"도스토예프스키가 언젠가 뭐라고 했는지 아니?"

고골리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모두 고골리의 <외투> 속에서 나왔다'라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언젠가 이해할 날이 있을 거다. 생일 축하한다."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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