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손님

2018-06-06

by a little deer
나에게는 이런 순간이 천국이었다. 아직 어렸지만 그런 순간은 영원하지 않으므로 있는 그대로 즐겨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와의 우정을 단단히 하거나 다른 차원까지 끌어올리려는 어설픈 시도로 망치지 말고. 결코 우정 따위는 있을 수 없다고, 이건 아무것도 아니고 단지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첼란의 표현처럼 항시와 전무 사이(Zwischen Immer und Nie). p.91.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아랫배도 아프고 다리도 퉁퉁 붓는다. 생리통. 턱에는 벌써 뾰루지가 두 개나 솟아올랐다. 영화라도 보러 갈까 했지만 포기. 오후 늦게 자매님과 산책 삼아 슬렁슬렁 나가서 필요한 자잘이들을 사고 들어와 저녁을 해 먹고 뻗어버렸다. 이제야 바닥에 드러누워 핸드폰으로 글자를 입력하는 중이다. 단지 아름다운 순간, 이라고 적으면서 그런 순간이 얼마나 드물고 금방 지나가 버리는지 생각한다. 눈을 한번 깜빡하는 사이. ‘네가 네 삶을 어떤 식으로 사는지는 네 마음이다. 하지만 기억해. 우리의 가슴과 육체는 평생 한 번만 주어지는 거야. 대부분의 사람은 두 개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가지. 하나는 실물 모형의 삶, 또 하나는 완성된 형태. 하지만 그 사이에 온갖 유형이 존재하지. 하지만 삶은 하나뿐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이 닳아 버리지. 육체의 경우에는 아무도 바라봐 주지 않고 가까이 오려고는 더더욱 하지 않는 때가 온다. 그러면 슬픔뿐이지. 나는 고통이 부럽지 않아. 네 고통이 부러운 거야. p.289.’ 영화와는 다르지만 엘리오의 아버지가 다정하게 얘기하는 저 장면에서 나는 좀 울었던 것 같다. ‘무슨 일이 일어나긴 했는데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울었다. p.191.’


시간이 흐를수록 슬픔이 많아지지만, 그중 하나는 ‘생물학적인 슬픔’이라고 하고 싶다. 그러니까 ‘육체의 경우’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젊음과 건강과 성과 여러 가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그런 일들. 종족 번식의 측면에서 크게 보면 다른 동물들과 다를 바 없는, 여성인 인간으로서의 나란 존재가 주는 슬픔. 엉망진창인 가운데서도 아직은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랄까, 또 거기서 오는 슬픔.


원작 소설이 더 좋은 경우도 많은데 이건 영화가 훨씬 좋았던 것 같다. 이탈리아와 여름과 사랑이라니 안 좋기도 어렵겠지마는. 영화에서 유독 귀에 걸리던 음악이나 다시 들어본다. Words are futile devices.


Futile Devices - Sufjan Stevens

It's been a long, long time

Since I've memorized your face

It's been four hours now

Since I've wandered through your place

And when I sleep on your couch

I feel very safe

And when you bring the blankets

I cover up my face

I do

Love you

I do

Love you

And when you play guitar

I listen to the strings buzz

The metal vibrates underneath your fingers

And when you crochet

I feel mesmerized and proud

And I would say I love you

But saying it out loud is hard

So I won't say it at all

And I won't stay very long

But you are life I needed all along

I think of you as my brother

Although that sounds dumb

And words are futile dev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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